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탈출구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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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탈출구가 안보인다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6.10.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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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특별기획 ①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중견기업들이 몰락하고 그동안 국내경제의 버팀목이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수출 경쟁력도 흔들리는 위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대내 여건은 더 좋지 않아 실업률과 가계부채가 나란히 사상최대치를 경신하며 겹악재에 빠졌다. 제때 한국사회 각 부문의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1997년 외환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매일일보에서는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한다’ 시리즈를 통해 현재 국내 경제의 문제점을 짚고 나아갈 바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①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탈출구가 안보인다

② 가계부채의 늪, 은행도 가계도 ‘비명’

③ 박스권 증시에 담긴 ‘샌드위치’ 한국

④ 기술금융이 미래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역대 최저치인 연 1.25%까지 금리가 내려왔다. 국내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 기준금리는 지난해 2분기 마이너스(-)1.20% 이후 연속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과거 답습한 일방통행 정책에 기업·가계 이상반응

[매일일보 김현정 기자] 저성장의 긴 터널이 끝날 기미를 보이자 않자 한국은행도 글로벌 ‘마이너스 금리’ 행렬에 동참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에서 보듯 과거 정책효과가 더 이상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라 마이너스 금리를 과감히 도입한다고 치더라도 과연 경기부양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해외 마이너스 금리 사례를 봐도 당초 기대한 소비 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반작용으로 저축률이 오히려 높아지고 부동산 투자과열이 거품론을 불러오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은이 경기부양과 가계심리의 반작용 속에서 가파른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들이 경제성장률과 물가가 동시에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면서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목표 달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출 실적 등에 악영향을 주는 자국 통화가치 절상을 막는 목적도 있지만 실질적인 금융환경에서는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므로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이동하는 효과를 노린다.

금융권의 뭉칫돈이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서 주식, 회사채, 부동산 등 시중으로 풀리고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부양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치다. 마이너스 금리 환경이 되면 자금 조달이 다급한 기업들도 CP, 회사채 발행비용이 줄어들면서 대출을 좀더 쉬워진다.

한은이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내들지 말지 고민하는 배경에는 최근 급감하는 국내 기업의 수출 실적이 자리한다.

조선, 해운 등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구조조정 난관에 처한데다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대기업의 수출 실적마저 주저앉을 기미를 보이자 한은의 고민이 깊어져만 가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대기업 매출은 전년보다 133조원 급감했고 중소, 중견기업의 매출도 기존의 증가세에서 6%(61조원)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은 5년새 반토막 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09년 5.54%에서 작년 2.17%로 하락했다. 30대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작년 마이너스(-)1.88%로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경제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마저 신제품 리콜로 인한 판매중단과 글로벌 판매량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란 악재를 맞이해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원화가치 상승까지 겹쳤다.

지난 9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12.94로 5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16개월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국내 수출실적이 주춤한 상황에서 원화 절상 기조는 대기업 이외에 마땅한 버팀목이 없는 국내 경제에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문제는 한은이 유럽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국내에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당초 목표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앞서 해외 사례를 봤을 때 글로벌 소비심리는 이미 기존 경제정책의 공식을 외면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경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독일의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지난해 9.7%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등도 OECD 통계가 집계된 1995년 이래 저축률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시중에 돈을 풀어 기업의 활발한 투자와 가계의 소비 진작을 의도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북유럽 국가들과 유럽연합(EU) 등이 시행했지만, 정작 결과는 쌈짓돈으로 현금을 더 늘려 쟁여놓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우 부동산 시장에 뭉칫돈이 몰리는 과열현상까지 나타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국내 경제의 현 상황을 연상케 한다.

사실상 한국도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도 있다. 작년 2분기 이후 국내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 기준금리는 마이너스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실질금리는 작년 2분기 -1.20% 이후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상태인데다, 올해 6월 1.50%에서 1.25%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인하하면서 더 심화됐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금리가 경기 부양에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하는 이상 현상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5개 은행의 원화예수금 잔액은 한은이 금리를 인하한 지난 6월 전후로 973조6249억원에서 984조401억원으로 10조4152억원이나 증가했다. 금리가 떨어지면 은행권에서 자금이 이탈할 것이란 예상을 무색케 했다.

전문가들은 정책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엇나가기만 하는 시장의 반응을 달랠 수 있는 해법으로 결국 ‘시장과의 소통’을 제시했다. 중앙은행과 시장이 유기체적인 정책 공조를 하지 않고 과거 정책을 답습한 일방통행식 행보를 계속한다면 애초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시장에서도 이상 투기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표영선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원은 “마이너스 금리의 부작용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각국의 경제 환경을 감안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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