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늪, 은행도 가계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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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의 늪, 은행도 가계도 ‘비명’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6.10.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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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특별기획 ②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4000억원으로 전달 대비 8조7000억원 증가했다. 그 중에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6조2000억원으로 8월 은행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 규모는 512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택이 주요 원인…집단대출 뇌관 떠올라

[매일일보 김현정 기자]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국의 가계부채 버블이 터지면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악성 디플레이션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더 내리고 싶어도 쉽게 인하카드를 꺼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이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고 주식 동향도 박스권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어 그러한 악성 디플레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 가계부채가 사상최대라는 덩치 차원을 넘어 불어나는 속도마저 가팔라 향후 디플레가 악화될 때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한국 금융과 산업의 자금 순환구조가 가계 저축에서 기업 투자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기업 곳간에서 가계가 돈을 빌리는 구조가 되면서 실질적인 수익이 모두 기업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원성도 나온다. 기업마저 수익성 악화를 겪으면 가계, 기업 부채가 모두 정부 부담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사상최대치를 거듭 경신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한은과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257조3000억원으로 2013년 2분기 이래 매분기 기록적인 고점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은이 최근 수년간 금리인하 행보를 보이면서 가계부채 규모는 더 늘어났다. 2013년 2분기 이래 5분기 연속 2.50%에서 금리를 동결한 한은은 2014년 3분기 들어 2.25%로 인하를 단행하고, 올해 2분기 1.25%까지 총 5차례 금리를 내렸다. 그동안 가계부채 증가폭은 230조원에 달한다.

한은이 금리를 더 내리기엔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위험이 있는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를 섣불리 인하하기에는 가계부채라는 위험요인이 너무 커져있다”며 “실효성 있는 가계부채 안정화 대책을 병행하지 않고 금리만 자꾸 낮추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그럼에도 금리를 더 인하한다면 먼저 우리경제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과 그 비용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당초 금리인하는 가계부채가 늘더라도 부동산 자산 증가에 따른 ‘부의 효과’로 민간소비가 활성화되는 것을 기대한다. 일반 가계의 경우 빚을 지고 주택을 얻더라도 그만큼 자산가격이 올라가면 재산이 늘어난 효과를 본다.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부의 효과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가 경기침체 부메랑으로 돌아오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 됐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7.2%로 41개국 중 8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작년엔 그 비율이 91.3%로 2011년 80%를 넘은 지 4년 만에 9부 능선까지 넘는 급속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기준으로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빚이 급증한 국가 중에 한국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한은에 따르면 2008년 말 대비 2014년 말 주요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에서 한국의 증가폭이 19.9%포인트로 그리스(27.1%포인트), 벨기에(22.1%포인트)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평균 상승률인 1.6%포인트를 큰 폭으로 웃돌았다.

한국 가계부채의 주된 원인으로는 단연코 주택이 꼽힌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8월 시중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전달대비 증가액 8조7000억원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조2000억원에 달했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 시중은행 비중은 예년과 비슷한 4조5000억원 규모였으나 정부가 정책금융상품을 대거 선보이면서 관련 신규대출이 올해 5월 1340억원에서 8월 무려 1조3476억원으로 치솟았다.

국제 사회에서도 한국의 주택 문제를 가계부채와 직결하는 사안으로 분석한다. 국제통화기구(IMF)가 올해 4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 10년간 주택가격 상승과 함께 동반 증가했다. 몇 년의 디커플링 기간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세값 등 주택가격이 오르면서 가계빚을 함께 불린 주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과다한 가계 빚을 줄여갈 방안에 고심 중이다. 최근 들어 서울 재건축 아파트 분양 기대감에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서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말 12.4%에서 올 상반기 49.2%로 급증하는 등 집단대출이 새로운 가계부채 ‘뇌관’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방의 경우 자영업자의 연체 문제가 심각하다. 은행 대출이 80% 이상인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저축은행 위주의 자영업자 대출이 많은데다 연체율도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올해 5월 6.3%로 여전히 은행(0.3%) 등 다른 금융권에 비해 높은 편이다.

정책 당국은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감안해 연소득 규정 등을 신설함으로써 실수요자 위주의 대출을 실시하고 가계부채를 경감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지면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집단대출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심사와 대출한도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를 집중적으로 취하고 있다.

가계 부채 급증을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사회 다른 부문으로 확산될 리스크가 있다. 최근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크게 늘면서 가계 부채는 물론, 기업 부채까지 정부 부담으로 넘어올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높은 수준을 기록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위험이 다른 경제주체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위험요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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