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증시에 담긴 ‘샌드위치’ 한국
상태바
박스권 증시에 담긴 ‘샌드위치’ 한국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6.10.25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I 특별기획 ③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한다]
코스피지수는 5~6년째 2000선을 넘으면 고꾸라지며 1800~2100선을 오가는 박스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초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대외 여건도 악화되면서 개인투자자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최근 5년간 국내 증시에서 60조원에 달하는 이탈 행렬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술력으로 기업수익 악화 뚫자…지원정책 봇물

[매일일보 김현정 기자] 최근 6년여간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단기 시세차익을 올리려는 외국인과 기관의 주고받기 장세 속에 샌드위치처럼 박스권에 갇혀있다. 10년째 국민소득 2만달러에 머물러 선진국도 아니고 신흥국도 아닌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는 사이에 기업 수익은 줄고 가계부채는 사상최대로 폭증했다.

초저금리 기조로 국내에선 마땅한 투자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국내 금융사들은 잇따라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박스권 권역은 더 넓어졌다. 2000선 상단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를 일컫는 ‘박스피’에 이어 ‘박스닥’, 즉 박스권에 갇힌 코스닥이란 표현도 생겼다.

그러나 증시 활성화의 근본 동력인 국내 상장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되살아나는 것이 급선무라는 시각이 많다. 자본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기준 코스피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총자산이익률(ROA)이 각각 6.9%, 2.1%로 5년 전인 2010년 11.7%, 3.7% 대비 급락했다. 대기업의 이익 독식 현상은 더 심화돼 영업이익 30위 기업이 전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87%로 2010년 68%에서 급등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자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배당,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환원 방안도 미약하다. 특히 코스피기업의 낮은 배당수익률(1.6%)은 국내 증시의 글로벌 스탠다드 충족을 언급할 때 누누이 지적되는 사안이지만 쉽사리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계와 시장은 국내 경기침체의 탈출구로 ‘기술력’을 꼽았다. 혁신적인 기술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만이 중진국 함정과 박스권 증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중소·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자금조달을 돕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하나둘씩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연내 비상장 창업초기 기업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장외거래시장 ‘KSM(KRX 스타트업 마켓)'을 개설 계획을 밝혔고, 앞서 올해 1월엔 창업·중소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법제화되는 등 기술집약적인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금융상품 먹거리를 확대해 박스권 맞춤형 투자전략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익숙한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스권 저점에서 펀드를 설정해 고점에서 환매하거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가능구간인 녹인(Knock-In) 위험을 헤지하려고 기초지수가 하락하면 주식을 새로 사들였다가 기초지수가 오르면 팔아치우는 방식이 굳어진 상황에서는 코스피가 늘상 박스권 평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에서 딱히 재미를 못본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2011년 9월 말부터 현재까지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37조원 가까운 주식을 매도했고 주식형펀드에서 2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환매했다. 최근 5년간 60조원에 이르는 개인 투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반복되는 공매도 문제도 개인투자자의 발길을 국내 증시에서 떠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특히 코스닥 공매도 세력을 당해낼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코스닥에서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래량 85%, 거래액 50%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상장기업의 늑장공시와 증권사 창구를 통한 공매도가 함께 쏟아져 나오면 고스란히 투자 손실은 개인투자자에게 돌아온다는 원성이 터져나온다.

코스닥 대장주인 카카오와 셀트리온이 더 크지 못하고 번번이 발목잡히는 까닭도 공매도에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개선방안을 도입해도 결과는 시원치 않다.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올 6월 말 실시된 공매도 공시제도가 무색하게 코스닥시장의 올 들어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비중은 6.32%로 2008년 1.22% 이후 사상최대치로 불어났다.

최근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에서마저 개인투자자의 자금 이탈 행렬이 나타나면서 오로지 뭉칫돈이 몰리는 곳은 부동산 정도가 남았다.

대외 여건을 감안했을 때 당분간 박스권 탈피보다는 더 떨어지지 않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불안심리가 커진 데다, 조만간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본격화될 우려에 주식, 채권에서 이탈한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과열현상이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내 증시의 성장을 위한 과제로 기업 수익성 강화와 합리적인 세제, 소액주주 참여 증대 등 총체적인 선순환 구조의 구축을 제시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원은 “박스권에 갇혀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현저히 낮아진 지금이야말로 역동성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