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여성 리더 초대석③] 심영숙 교동씨엠 회장 “과자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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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여성 리더 초대석③] 심영숙 교동씨엠 회장 “과자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
  • 나기호 기자
  • 승인 2023.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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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과 타협 안 해”…국산원재료‧전통방식‧수작업 고집
한과 시장 명맥 ‘위기’…정부 지원‧명인업계 현대화 절실
심영숙 교동CM 회장. 사진=교동CM 제공
심영숙 교동CM 회장. 사진=교동CM 제공

[매일일보 나기호‧김민주 기자] 명절날이면 손에 쥐어지던 끈적하고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낯선 한과(韓果). 불과 몇 년 전까지 2030세대에게 한과란 낡고 흥미 없는 먹거리였다. 최근 들어선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를 필두로 한과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약겟팅(약과 티켓팅)’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교동한과’는 한과의 재도약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C사 입점 직후 식품 부문 판매 랭킹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벌꿀약과’도 교동한과의 작품이다.

한과의 거장 심영숙 명인. 그는 우리나라 한과 시장을 주름잡는 인물이지만 독무대를 바라지 않는다. 매출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국내 한과 시장이 발전하는 변화의 바람뿐이다.

서울 논현동 교동CM 사옥에서 만난 심영숙 회장은 한과 시장의 젊은층 유입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심 회장은 해외 명품 디저트의 활개 속 입지가 좁아진 전통과자 시장을 20여년간 묵묵히 지켜온 대한민국식품명인 59호다.

교동CM은 1999년 강릉교동한과 설립으로 시작됐다.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 자리한 제조공장은 고향이 강원도인 심 회장이 직접 물색해 찾은 최적지다. 온화한 햇빛과 대자연으로 둘러싸여 전통의 지혜와 정성의 맛을 담았다는 교동한과의 실체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는 여전히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나이에 내포된 수많은 의미는 형언에 불과할 정도로, 심 대표의 상상력은 한계치가 없었다. 교동CM이 오랜 기간 흔들림 없이 국내 1위 자리를 지켜온 동력을 엿볼 수 있었다.

⃟ 정통에 대한 고집을 ‘장인정신’이라 부른다

“대량생산, 값싼 해외 원자재 대체를 통한 원가 절감 등 현실적 문제와의 타협을 포기하고 끝까지 장인정신을 고집하니, 결국 저만 살아남더군요. 한과 사업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본과 인프라, 브랜드 파워를 갖춘 대기업은 중소기업들이 이끌어온 시장을 한순간에 독점해 잠식시켜버리곤 한다. 하지만 한과 시장은 그런 우려에서 자유롭다. 효율성과 수익의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기업 특성상,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심 회장은 한과는 그 어떤 분야보다 ‘장인정신’이 필수라고 꼽았다. 한과의 제조 과정은 반죽, 엿물 첨가, 튀기는 게 거의 전부일 정도로,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래서 더 장인 정신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이 과정에 아주 미세한 정성과 고도의 손기술에 따라 맛과 품질, 상품성이 갈린다.

교동한과는 강원도 옥수수를 계약재배해 만든 옥수수조청을 사용하고 있다. 공장 직원 80여명이 직접 유과 하나하나에 붓칠을 수작업하고, 찹쌀을 30도에서 10일 정도 자연발효하는 등 강원도 진부의 청송심씨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비법을 계승했다. 사용되는 모든 원부자재는 국내 농가와 직계약해 생산하거나 농협을 통해 수급한 국산품이다.

품질 역량 집중을 위해 기존 67종의 제품 카테고리를 현재 30~40여종으로 추렸다. ‘교동’ 브랜드를 활용해 떡, 빵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해보자는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아왔지만, 심 회장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과’에만 집중하겠단 명인의 신념이다.

장인정신은 패키징에도 적용된다. 교동한과의 제품을 받는 사람이 대접받고 있단 생각이 들게끔 심 회장의 심미적 혜안과 역량을 디자인에 쏟아냈다. 교동한과엔 한꺼번에 벌크 포장된 상품이 없다. 하나씩 공들여 소포장한다. 한과 세트는 1층엔 ‘밥’을 뜻하는 유과를 깔고, 2층에 정과‧유밀과‧숙실과‧엿‧엿강정‧고시볼 등 ‘고명’을 얹는다. 상자에 새겨진 꽃 그림, 각 세트와 제품들의 상품명엔 한국 문화와 심 회장의 고민, 정성이 고스란히 입혀져 있다.

심 회장은 “제품 경쟁력 하나로 그 치열하다는 백화점에서 20여년을 버텼다”며 “그동안도, 앞으로도 품질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뜻을 분명히 했다.

교동한과 제품 이미지. 사진=교동CM 제공
교동한과 제품 이미지. 사진=교동CM 제공

⃟ 우리가 놓친 한과의 매력…정부 지원 절실

대만의 펑리수, 일본의 도쿄바나나 등 타 아시아 국가에선 자국 디저트 상품화와 이를 위한 지원이 활발하다. 반면, 면세점 배정 공간이 구석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젊은층의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과 시장의 명맥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다. 심 회장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전 세계에서 발효를 통해 제조되는 전통 디저트는 한과가 유일합니다. 건강한데다, 국내 농산물을 사용하기에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을 두고 발전시키면 N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사업영역이지만 정부는 무심합니다. 향후 관련 기관의 지원 여부에 따라 사업의 영위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지금의 식품명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브랜드를 지키는 데만 집중해, 전파와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심 회장은 전통만 고집할 것이 아니고 모던(현대)이 접합돼야만 한다고 힘을 줘 말한다. 교동CM 기업명부터가 ‘Classic and Modern(전통과 현대)’란 뜻을 담고 있다.

심 회장은 “한과가 맛과 건강, 미적 요소까지 선물로서의 가치를 온전히 지닌 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나를 포함해 정부, 소비자 모두의 과제”라며 “그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우리의 고유 문화인 ‘전통 과자’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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