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지과학의 기원 또는 사이버네틱스 '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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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인지과학의 기원 또는 사이버네틱스 '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03.1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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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기계로 만들고자 한 최초의 과학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를 추적하다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 "이 책은 사이버네틱스의 역사에서 현대 인지과학의 뿌리를 발견하고, 컴퓨터적 세계관의 한계에서 인지과학을 구해 낼 수 있는 과거의 기회들을 보여 준다." --캐서린 헤일스(UCLA,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저자)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이나 컴퓨터와 같은 지능적 체계에서의 정보처리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오늘날 인공지능 탄생의 지적 배경이다.

인지과학은 인공지능의 성공에 힘입어 스스로를 마음을 기계로 만드는 '마음의 과학'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21세기를 지배 중인 이 마음의 과학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응용인식론센터(CREA)의 소장 장피에르 뒤피는 인지과학의 기원으로 '사이버네틱스'를 지목한다.

존 폰 노이만, 노버트 위너, 워런 매컬러 등 세기의 천재들이 모인 '메이시 회의'에서 탄생한 사이버네틱스는 인류가 이룩한 수학과 과학의 성과를 집대성해 '정보', '피드백', '네트워크', '코드' 등 오늘날 거의 모든 학문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을 개발해 냈다.

사이버네틱스는 이들 개념을 통해 살아 있는 모든 것, 나아가 '마음'에 기계의 지위를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뒤피에 따르면 사이버네틱스의 야심 찬 시도는 실패로 귀결한다.

사이버네틱스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 온 기존 학문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고, 다른 학문과 만날 기회를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의 저자 뒤피는 오늘날 인지과학 또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진보를 위해 인간을 격하하는' 인지과학은 자신의 지적 기원인 사이버네틱스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길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뒤피가 이 책에서 1940~1950년대 사이버네틱스의 흥망성쇠를 집대성하고, 사이버네틱스와 인지과학 사이의 잊힌 연결 고리를 복원하려 한 이유다.

뒤피의 책이 처음 출간된 1994년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인지과학계의 사정은 달라졌다. 따라서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독자들에게 낯설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를 쉽게 전달하고 1994년과 2023년 사이의 시대적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각 장 앞에 옮긴이의 해설 '안내의 글'을 실었다.

'안내의 글'을 통해 처음 뒤피의 책이 등장한 배경과 현재 변화한 인지과학계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지과학자 배문정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인지과학은 뒤피가 기록한 사이버네틱스의 실패한 역사에서 새롭게 배우고 나아가고 있다. 사이버네틱스라는 잊힌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는 인지과학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으로 질주하고 있는 모든 현대의 과학이 되새겨야 할 교훈을 제공한다.

-- 나노기술이 지향하는 꿈의 중심에서, 우리는 인지과학이 사이버네틱스 시기부터 지속해 온 어떤 역설을 마주한다. 과도하게 오만한 야심과 과학적 인본주의의 자부심, 이 상반된 태도가 하나로 합쳐져 지어내는 이 기이한 역설은 곧장 인간은 낡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고, 바로 이 역설의 빛 아니 그림자 속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공학과 관련된 온갖 윤리적인 질문들이 생겨난다. -- "지은이 서문(2009년 MIT판)" 중에서

-- 위너가 "인간의 인간적 활용"을 말했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인간의 지구적 활용'을 생각해야 한다. 아직 인간을 대신할 윤리적이고 주체적인 기계는 등장하지 않았다. 인간이 기계를 이기적 욕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 그 기계는 반란과 혁명의 기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문제는 인간이다.. -- 5장 안내의 글 "혼돈의 바다" 중에서

지은이 '장피에르 뒤피'는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광산학을 전공했으나, 철학과 사회과학에 관심이 높아 일찍부터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했다. 1976년 이반 일리치가 주도한 학자들의 모임에서 하인츠 폰 푀르스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1982년에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CREA(응용인식론연구센터)를 설립했다. CREA에서 뒤피는 프란시스코 바렐라, 앙리 아틀랑과 함께 생명, 마음, 사회를 자기조직화와 복잡계 원리로 설명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자기조직하는 복잡한 사회 체계에 인간 주체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오랜 탐색 끝에, 유물론적 관점으로는 인간 주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스스로 이원론자임을 선언한다. 그의 친구 바렐라와 달리 오랫동안 무명이었던 뒤피는 <계몽적 파국주의를 위하여: 불가능이 확실할 때>(2002)를 출간한 후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사상가로 부상했다. 최근 유명세에 힘입어 국내에도 그의 책 <경제와 미래>, <파국이나 삶이냐>가 번역 소개되었다.

옮긴이 · 해설자 '배문정'은 한국의 인지과학자. 현재 우석대학교 교수다.  1980년대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했다. 석사 후 인지과학 박사과정에 진학해 철학, 신경과학, 언어학, 인공지능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했다. 예일대학교와 코네티컷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이때 생태주의 심리학자 마이클 터비를 만나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얻었다. 귀국 후 학생 교육에 전념해 왔으나, 남은 시간은 오로지 학자로만 살아갈 꿈을 꾸고 있다. 학자로서 남은 소임은 과학에 윤리와 책임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초기 사이버네틱스의 유산, 특히 위너의 윤리적 비전과 깁슨의 생태주의 심리학, 바렐라의 실행주의 인지과학을 결합하고 발전시켜, 21세기 문명을 헤쳐 나갈 나침반으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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