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업 압박하는 정부, ‘교각살우’ 우 범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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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기업 압박하는 정부, ‘교각살우’ 우 범할라
  • 박효길 기자
  • 승인 2023.03.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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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효길 기자]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금 제도에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초과 이익 공유’ 등 까다로운 조항을 잔뜩 붙인 탓이다.

우리 정부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 등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금융·통신 분야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고, 실효적인 경쟁 시스템을 조성할 수 있는 공정시장 정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달 24일 금융, 통신 분야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영업 정책이나 불공정 약관에 대한 점검 계획과,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개선 방안 등을 보고했다.

여기에는 통신시장 관련,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시장의 가격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시장분석을 실시하고 대리점·판매점 추가지원금 상한(현 15%) 확대 등 단말기유통법 등 관련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 등이 담겼다.

이와 함께, 알뜰폰 사업자가 이동통신3사의 독과점을 견제할 수 있도록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고, 독립·중소 알뜰폰 사업자의 안정적 사업기반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어 지난 2일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마련을 위해 열린 토론회에서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20년 넘게 이어진 독과점 구조와 업체별로 차별성이 부족한 요금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통신산업이 내수 시장 위주인 탓에 이 같은 정부의 요구에 맞대응하기도 어렵다. 통신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정부로부터 임대 형식으로 할당 받아 사업을 한다. 통신산업은 안보 등을 이유로 글로벌 시장에 나가기 어려운 탓에 ‘제로섬 게임’(이득의 총합이 0이 되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논리는 얼마 전 정유업계를 둘러싸고 회자된 ‘횡재세’와 다를 바 없다. 고유가로 인해 얻는 이익을 횡재세를 통해 걷겠다는 발상이다. 반대로 유가가 폭락하면 정유사에게 이익보전을 해줄 것인가. 그런 경우에 대한 얘기는 없다.

담합 등 불공정 행위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단속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통신산업은 알뜰폰 진입 등을 통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통신사에 대해 요금인하 압박으로 옥죌게 아니라 K-콘텐츠 분야 투자나 인공지능(AI) 첨단 신사업 등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우위를 가져가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정부가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의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담당업무 : 게임, 인터넷, IT서비스 등
좌우명 : 꼰대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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