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세대출이 ‘빌라왕’ 양산… 대안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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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세대출이 ‘빌라왕’ 양산… 대안 고민할 때
  • 이상민 기자
  • 승인 2023.01.11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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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건설사회부장
이상민 건설사회부장

전세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제2, 제3의 ‘빌라왕’이 계속 쏟아져 나오며 관련자들이 속속 구속되고 있다.

이들의 수법은 판박이인 듯 비슷했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적게는 수십 채에서, 많게는 수백 채의 빌라를 매입한 뒤 전세보증금을 떼먹었다. 허위 임대인을 앞세워 전세 계약을 맺고 그 전세금을 활용해 집을 늘려나갔다. 집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또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자금으로 활용했다. 대출을 받고는 집의 명의를 신탁회사에 넘기고도 집주인 행세를 하며 전세 계약을 맺고 전세금을 가로챈 대담함도 보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세자금대출이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울에서 사기 행각을 벌인 신모씨의 배후에는 공인중개법인이, 강서구와 양천구에서 빌라 240여 채를 갖고 사기를 벌였던 정모씨의 배후에는 분양컨설팅업체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씨의 경우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갑자기 숨지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개사까지 고용해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는 이들에게 속아서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세입자가 수백명에 이른다.

피해자 중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의 경우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있어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피해자 10명 중 7명은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뗀 20~30대들이어서 안타까움을 더 한다. 이들 대부분은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전세금이 전 재산이다시피 하다. “빚만 잔뜩 진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젊은이의 질문에 국가와 사회는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건의 경위를 철저히 파악하고 조직적인 사기 행각을 벌인 이들은 엄벌에 처해 더 이상 전세 사기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서민들의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는 악질 범죄인 전세 사기를 이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더불어 범죄의 수법을 파악하고 그들이 악용한 전세자금대출 등의 제도적 보완도 마련해야 한다. 유사한 수법의 사기 행각이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법과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이미 범죄의 먹잇감으로 노출됐다면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화에 크게 기여해 온 전세자금대출이 지금 딱 그런 상황이다. 대출받은 전세자금은 신탁회사가 엄격히 관리하고 집주인에게는 높은 이자를 주는 것도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세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 대여 방식이다.

고금리 등의 이유로 최근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지고 있다. 월세 가격을 합리적으로 관리만 할 수 있다면 이참에 전세를 월세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 방법이다. 정부가 월세 전환을 지원한다면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모든 전세를 월세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이 사라지니 그를 노린 사기도 자연히 없어질 것이고 세입자들 역시 혹시 나도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고민해 이번만은 반드시 전세 사기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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