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의 부동산 비책, 결국 ‘다주택자’ 혜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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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의 부동산 비책, 결국 ‘다주택자’ 혜택인가
  • 조성준 기자
  • 승인 2023.01.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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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다주택자’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이미지가 연상될까. 말 그대로 2개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을 뜻하는데, 그 어감에 묘한 구석이 있다.

상당수 사람들은 다주택자라는 말에서 ‘투기’를 떠올릴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3채 이상 소유하면 투기 이미지가 강해진다. 5채, 10채씩 보유해 임대업을 하면 투기에 ‘꾼’이 붙는다.

부의 상징같은 용어이기도 하다. 결혼 등을 앞두고 자신이나 부모의 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집이 몇 채 있다’라는 식의 노골적인 말을 은근하게 던지기도 한다. 물론 진짜 부자들은 부를 숨기기에 바쁘지만 적당한 부자들은 자신이 다주택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다주택자’는 분노·질시·동경이 뒤섞인 K-다의어의 대표주자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규제 장치들을 대부분 해제했다. 인위적인 규제로 활화산 마그마같은 투기심리를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에 긍정적인 점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초반부터 강조해온 규제 해제가 결국 다주택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실망스럽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다주택자를 활용하기로 한 모양새다. 다주택자들에게 적용됐던 중과세 조처들이 대폭 완화되면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정부로서는 가장 간편한 길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주택 하나를 구입하는 데도 서툰 대부분 서민들과 달리 눈에 불을 켜고 부동산 정책을 공부하는 다주택자들은 행동이 신속하다.

실제로 올해 들어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전국 아파트 거래량이 소폭 상승했다고 한다.

다주택자 100명이 주택 2만2000여 채를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다주택자는 곧 주식의 큰손과 같은 셈이다.

진영을 떠나서 정부는 주택이 투자나 투기가 아닌 주거공간으로 굳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윤 정부는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뻔한 방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것 같다.

인구는 감소하고, 수도권 과밀·지방 소멸은 심화되고 있다. 그 어려운 지난해에도 다주택자들은 1년 전에 비해 2000여 채를 더 사들였다. 이것이 훗날 버블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토양을 제공한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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