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십 년 반복된 전세사기 새해에는 뿌리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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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수십 년 반복된 전세사기 새해에는 뿌리 뽑아야
  • 이소현 기자
  • 승인 2023.01.03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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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소현 기자] 서울 용산구 효창동 일대 한 주거지역. 이곳에 막 결혼식을 치룬 한 A씨 부부가 보금자리를 틀었다. 맞벌이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신축빌라 전셋집을 마련한 것. 신혼집을 차린 이들 부부는 '내 집 마련'을 소원하며 돈을 저축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인중개소를 들려 발품을 팔았다. 신도시 개발 소식도 들리며 부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자신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걸 깨닫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주인이었던 목사 부부는 어느 날 말도 없이 야반도주했다. 집주인은 애초에 신축 빌라를 짓는 데 들어간 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전세보증금으로 그것을 충당하고는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잠적했다. 빌라 세입자 6가구가 냈던 수개월 치 수도·전기요금은 그들의 도주비로 쓰였다. 이른바 '신축빌라 전세사기'로 불리는 고전적인 수법 중 하나다.

A씨 부부 이야기는 내일 아침 9시 뉴스를 타도 어색함이 전혀 없을 지경이다. '빌라왕' 전세사기가 적발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중이다. 무자본 갭투자로 1139채를 보유했던 빌라왕을 넘어 2700채를 건설하고 차명 보유한 '건축왕'까지 적발됐다. 그러나 A씨 이야기는 아무래도 뉴스에 실리지 못할 듯하다. 시의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무려 30년도 훨씬 전에 발생했다. 

사실을 알고 나면 놀랄 수밖에 없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바뀔 시간이다. 그동안 전세사기의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더욱 수법이 교묘해졌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제도가 확대되며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경로는 생겼다. 문제는 이를 '미끼'로 삼아 안전한 매물로 홍보하는 사기가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갚지 않은 돈은 세금으로 대신 갚아야 할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지금 행보는 고무적이다. '도시괴담'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피해를 정부가 직접 나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최근 빌라왕 같은 집주인이 적발되고 있는 것도 윤 정부가 내세운 '엄정수사 원칙'의 연장선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은 아니다"면서도 "정부가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만큼은 긍정적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바야흐로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월 1일 새해 첫 방송 출연에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전세사기 피해예방을 약속했다. 그는 "진작 마련됐어야 했는데 손을 놓고 있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다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피해가 수천명, 수만명 생겨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새해 첫 약속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정부는 후속조치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 시스템의 혁신도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피해 예방책을 펼치는 중이다. 임대인의 국세 체납 정보와 융자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앱으로 만든는 것 등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책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전세대출과 보증보험을 심사를 강화해 깡통전세를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퇴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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