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전철 밟아가는 서민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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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日 전철 밟아가는 서민 금융시장
  • 홍석경 기자
  • 승인 2022.12.29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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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일본은 지난 2006년 대금업법 개정을 통해 법정최고금리를 연 29.2%에서 20%로 낮췄다. 이후 2014년 3월 말 기준 일본의 ‘소비자금융회사’(대부업체) 시장규모는 20조9000억엔에서 6조2000억엔으로 약 70% 대폭 감소했다. 3만여개에 달했던 업체도 2015년 들어선 2000여개로 줄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한 영향이다.

이중 살아남은 업체를 중심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지면서 대부업체의 대형화와 과점화가 진행됐고, 한쪽에선 최고 연 2000%에 달하는 불법 사금융 시장이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일본의 법정최고금리 정책은 모범적이기보단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불러일으킨 실패한 정책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서민금융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대부업법이 제정된 2002년 10월 당시 법정최고금리는 시행령에 따라 66%로 결정됐다. 이후 시행령이 7차례 개정되며 지속적으로 최고금리가 낮아졌다. 작년 7월7일 법정최고금리는 24%에서 현재 20%로 인하했다. 올해 대선에서는 법정 최고금리를 10%로 낮추자는 공약한 후보도 있었다.

지난 26일 ‘러시앤캐시’로 알려진 대부업계 1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연체율 급등과 조달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신규 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자산규모 1조원이 넘는 대부업계 2위 업체 리드코프도 지난 10월 신규 대출 규모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현재 기존의 20% 수준으로 신규대출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대출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 6월 말 기준 전체 대부대출잔액은 15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조2000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대부이용자수는 106만여 명으로 전 분기 대비 5만6000명(5.0%) 감소했다. 지난해 말 기준 대부이용자수는 112만명이었는데 지난해 9월 말(123만명)과 비교해 11만명(8.9%)이나 줄었다. 대부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신용이 좋은 차주 중심으로 영업을 강화하고,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인 영향이다.

서민금융 ‘최후의 보루’인 대부업체마저 대출 공급을 줄이면서, 불법 사채 시장은 때아닌 호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상담·신고는 9238건으로 전년 대비 25.7% 증가했다. 특히 최고금리 초과(2255건)와 불법 채권추심(869건)은 각각 85.0%, 49.8% 급증했다. 올해 1분기에만 불법사금융 피해 상담·신고는 2000건을 돌파했다.

금융시장이 발전해있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도 법정 최고금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폐쇄적인 구조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통일적인 금리 상한제를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15개 주와 워싱턴 D.C에서만 10~40% 대의 ‘법정금리상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법률 역시 명목상 규제, 선언적 의미에 그칠뿐더러 대표적인 ‘급전창구’인 ‘페이데이론’ 이용자는 급증하고 있다. 다른 주들도 금리 상한제 철폐, 페이데이론 금리 상한 적용 예외, 금리 상한 세자리 인상 등 정책을 유연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최고금리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정 최고금리 제도는 서민들의 ‘고통’에서 출발했다. 고금리로 인해 서민들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이 커진다는 논리였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해 있다. 이렇게 할 바엔 금리 구간을 나누고, 시중은행과 2금융권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그냥 대출금리 1%로 통일하면 된다.

불법이 아닌 이상 제도권 금융의 대출은 조달금리 외에도 차주의 상환능력과 신용도 등을 고려한다. 금융회사가 대출 심사를 잘해서 상환능력이 검증된 차주들에게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환경을 만들어 놓고 공급만 하라니, 서민금융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금융시장의 이성을 되찾을 시점이다.

담당업무 : 보험·카드·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과 P2P 시장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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