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전세 사기 근절, 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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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전세 사기 근절, 정부가 나서야
  • 이상민 기자
  • 승인 2022.12.2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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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건설사회부장

서울 강서구 화곡동 등에 빌라 1139채를 보유했다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숨지면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 이른바 ‘빌라왕’ 사건의 충격이 채 기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2700여채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260억원대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 챈 건축업자가 붙잡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바지 임대인'으로 내세워의 이들의 명의로 임대 계약을 맺는가 하면 공인중개사들까지 끌어들여 전세 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 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 사고 건수는 852건으로, 금액으로는 1862억2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 704건에 비해 150건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금액도 1526억2455만원 대비 22%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갚아준 전세보증금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HUG에 따르면 보증사고로 인한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이 11월 606가구에 1309억원으로 전달 187억원보다 222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전세사고의 위험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빌라왕’처럼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세보증금을 받아 새로운 집을 계약하는 이른바 ‘무자본 캡투자’로 피해자가 양산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빌라의 경우 세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세 사기의 경우 ‘건축왕’ 사례에서 보듯이 건축업자와 부동산 중개인들이 공모하는 경우도 많아 세입자가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세가율 등을 확인해도 중개사가 거짓 정보를 알려줄 경우 세입자가 그것을 걸러낼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이 전세 사기에 대비하는 방법은 전세보증금보험에 가입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경우는 전세보증금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일반 다주택자의 경우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임차인이 직접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정부는 전세사기를 임차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들이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0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인 전세금을 날릴 위기에 내몰린 '세입자의 눈물'을 정부가 나서서 닦아주어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에스크로(escrow) 제도 등을 도입해 전세금을 임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닌 보증보험회사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입금하게 하고 계약 과정을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에스크로 제도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3자가 상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개를 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를 말한다. 보증보험회사가 계약 과정을 들여다보고 임대인에게 문제가 있으면 계약을 진행하지 않고 임차인들에게 계약금을 돌려줌으로써 전세 사기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빌라 등을 포함한 주택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동산 정보 시스템을 만들어 하루빨리 전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전세 사기는 내 집을 갖고 있지 못한 저소득 서민을 범죄 대상으로 해 죄질이 더욱 나쁘다. 빌라왕 사건으로 첫 아이를 유산한 채 거리로 나앉게 된 신혼부부의 눈물을 개인의 부주위 쯤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 참에 제도적 정비를 통해 다시는 이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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