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자본 갭투자'가 불러온 재난, '빌라왕'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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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자본 갭투자'가 불러온 재난, '빌라왕' 피해자들
  • 최재원 기자
  • 승인 2022.12.21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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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최재원 기자] 지난 10월 수도권에서 1000채 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임대해 속칭 ‘빌라왕’으로 불리던 40대 임대업자가 김모씨가 사망하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그는 사기 혐의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의 수사를 받던 중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그는 호텔에서 장기 투숙을 하고 있었으며 경찰은 그가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봤다. 결국 경찰은 사망한 김씨를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고 빌라 건축주와 부동산 중개 브로커 등 범죄 관련자 수사는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김씨는 무자본으로 빌라를 수십 채 사들인 후 세입자들을 상대로 전세 보증금 등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고른 뒤 전세 세입자를 구하고 그 주택을 매입하는 수법이다.

문제는 김씨의 사망으로 수많은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의하면 김씨가 사망한 탓에 다수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없게 됐다. 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HUG도 대위 변제 절차를 밟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HUG가 대신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한 뒤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방식이다. 김씨 소유 주택 세입자 중 HUG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대상은 최소 2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서 ‘전세 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지원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촉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토교통부는 빌라왕 관련사건 16건을 포함한 전세사기 106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이 같은 피해사례는 지난해부터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집값 하락이 예견되고 실현되면서 전세가격보다 떨어진 집값이 나타나면서 이른바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커진 바 있다. 깡통전세는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정도로 집값이 떨어진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들은 올해 전세사기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관련 조사와 함께 대책들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주변 지인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너는 건설‧부동산 기자라면서 집 안사고 뭐했냐” “이렇게 오르는데 대출 좀 당겨서 받아도 이득 아니냐” 등의 말이다. 혹자로부터는 “갭투자 안하고 뭐했냐”라는 말도 들었다.

사회적 현상을 ‘개인의 욕심’ 때문으로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있지만 이 경우는 확실해 보인다. 보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익을 접하면 먼저 옳고 그름을 생각해봐야 한다.

다만 무자본 갭투자로 인한 피해사례의 경우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이 같은 욕심들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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