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권과 생존권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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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권과 생존권의 간극
  • 신승엽 기자
  • 승인 2022.11.2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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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신승엽 기자]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토론이 발생할 때 각자의 주장에는 다른 명분이 존재한다. 찬성과 반대의 여론으로 나뉠 경우 더욱 다양한 명분이 제기된다. 이들은 서로 유리한 측면만 내세운다. 

국내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목소리가 작으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점에서 제기한 의문들이 묵살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목소리가 큰 세력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청중을 압도한다. 

생존권과 이권의 간극은 최근 정부가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는 ‘납품대금 연동제’로 확인할 수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가격 상승분을 자동으로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을의 입장에서 거래관계인 갑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다. 현재 경제단체 가운데 중소기업중앙회만 납품대금 연동제의 법제화에 찬성하고 있어 을의 입장이 더욱 불리해지는 모양새다. 

중소기업계는 납품대금 연동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에 고정비 부담도 계속해서 상승한다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여유 자본이 부족하다는 점으로 봤을 때 대기업‧중견기업들의 후려치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법의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존재한다. 지난 2008년 납품대금 연동제의 입법이 추진됐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자율조정(조정 협의회)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민간의 자율적인 조정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중소기업 382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납품대금 조정 신청을 한 적이 있는 기업은 4%에 불과했다. 을의 입장에서 갑에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상분을 추가 요청할 경우 불이익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거래관계를 기반으로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갑의 요구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율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신으로 퍼진 가운데, 대기업‧중견기업들은 강제성이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중기중앙회를 제외한 경제 5단체(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23일 납품대금 연동제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경제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수‧위탁 관계의 거래가 체결된 이후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대금도 감소하기 때문에 역으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계의 수익성 하락을 우려한다는 것이 골자다. 법제화는 시범운영 기간 종료 이후에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중소기업계의 주장은 전례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주장은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앞세워 본인들의 이권을 유지하려는 상황으로 보인다. 생존권과 이권은 다른 개념이다. 이권은 이익을 챙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생존권은 말 그대로 더는 버티가 어렵다는 뜻을 가졌다. 정부의 존재 의의가 생존권 보장에 가깝기를 바란다. 

담당업무 : 생활가전, 건자재, 폐기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좌우명 : 합리적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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