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현장에 있는 듯”…생존자·구조인력·목격자 '트라우마'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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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현장에 있는 듯”…생존자·구조인력·목격자 '트라우마' 호소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2.11.0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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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 이루지 못해”
전문가들 “사고 간접 경험해도 트라우마 겪을 수 있어”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서 손녀를 잃은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서 손녀를 잃은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나광국‧권영현 기자] “눈앞의 사람들이 넘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 A씨(여·23)는 2일 서울광장의 분향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A씨는 인파에 휩쓸려 사고 현장 인근까지 이동하면서 참사를 목격했다. A씨처럼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이 정신적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용산 이태원 일대 대규모 압사 사고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유가족은 물론 현장으로 출동했던 경찰과 소방대원,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특히 당시 상황을 여과 없이 담은 영상과 사진이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이를 본 상당수가 우울·무기력감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일 오전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인 20대 여성 B씨의 발인식이 진행된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B씨의 친구 C씨는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는 “그날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고 소식을 현장이 담긴 영상과 사진을 SNS로 접했고 이후 친구도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겠됐다”며 “참사 이후 지하철을 타야할 일이 있었는데 당시 열차에 바로 탑승하지 못했고 속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조여 오는 고통을 느껴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성동훈(남·54)씨는 이태원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성 씨는 “지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슬프다”며 “자식, 조카뻘 되는 청년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고 사람들이 CPR하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현장으로 달려가 CPR을 실시하고 수송에 도움을 줬는데 당시 눈을 뜨고 사망했던 한 청년의 모습은 눈을 감아도 생각난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추모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D씨(여·27)는 “그날 이태원역 인근에 약속이 있어서 왔었고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을 봤지만 큰 사고가 발생했을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며 “집에 귀가해서 뉴스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한 이후 잠에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적으로 너무 힘들고 트라우마 때문인지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근육통도 있었다”며 “결국 아침에 회사에 연차를 내고 추모현장에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태원역 추모현장을 찾은 50대 여성 E씨는 취재 전후로도 계속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E씨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젊은 청년부터 청소년까지 아까운 목숨이 희생돼 안타깝다”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8년 밖에 안됐는데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 슬프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뉴스나 댓글을 통해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생해 참사 이후 인터넷도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사고로 인한 심적인 고통을 호소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엔 자신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라 소개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경찰관은 “소속이 이태원 관할은 아니지만 사고 당시 지원을 나갔다”며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분이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현장과 사망자들 시신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영상이나 사진을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고 소식을 듣고 ‘남 일 같지 않다’는 마음으로 불면증, 죄책감이 드는 것은 ‘간접외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며 “당시 사진,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것을 멈추고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슬픔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뿐 아니라 영상을 본 이들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며 “소방이나 경찰 등 희생자들과 직접 접촉한 이들은 PTSD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난 이후 중요한 건 ‘연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위로하는 것이다”며 “우울함 등 증상이 지속되면 상담사난 의사를 찾아가야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학회 총무위원장인 백명재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장에 계시지는 않더라도 동영상을 통해서 목격하신 분들도 상당한 충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제일 추천하는 방법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모자이크 처리가 되더라도 자극을 받으실 수도 있기 떄문에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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