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자 없다고 가동 안된 '안전매뉴얼'..."관리대책 새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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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자 없다고 가동 안된 '안전매뉴얼'..."관리대책 새로 세워야"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2.11.0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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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탓' 사고 원인 돌리는 정부...부랴부랴 개선방안 검토
7년 전 경고 패싱한 경찰도 도마..."매뉴얼 만들 기회 놓쳐"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을 표명을 표명하며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을 표명을 표명하며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이태원 압사 참사’의 배경을 두고 다양한 문제가 거론되는 가운데 행정당국의 ‘소극 행정’이 사고의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정부는 ‘안전관리 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이번 참사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매뉴얼은 가동되지 않았고, 멈춰버린 행정에 '안전'이 방치된 뼈아픈 사례로 남게 됐다.

사고 사흘째가 됐던 지난달 31일에는 지자체뿐 아니라 경찰에서도 주최가 불분명한 다중 인파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다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최 측이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관련 매뉴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이 있는 경우 사전에 지자체와 경찰, 소방, 의료 등 유관 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데 이번 사고는 그런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정부도 같은 문제를 거론했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본부 총괄조정관)은 같은날 오전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 개최는 유례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었다.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각 지자체가 주최하는 지역축제 안전관리를 위해 지난해 매뉴얼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어 이 매뉴얼을 적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일지라도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일정 인원 이상이면 지자체나 경찰, 소방이 나서서 조치할 매뉴얼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며 "단위면적당 몇 명 이상 모일 경우 등을 가정해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선 제도의 헛점을 논하기 전에 현행법과 시행령하에서도 당국이 ‘적극 행정’에 나서면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경직된 공직 사회를 움직이려면 제도화를 통한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는게 최선이라는 의견이 적잖이 나온다. 핼러윈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에는 서울 시내 주요 거점에 인파가 몰리는 만큼 대형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도 이를 인정하고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서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진행한 확대 주례회동에서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주최자가 없는 경우 선제적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지자체가 최소한의 안전 조치와 차량, 인원 통제를 경찰에 협조 요청하고, 경찰도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지자체에 긴급 통보하는 시스템에 대해 (앞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도 "주최자가 있으면 주최 측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지자체와 경찰, 소방 등의 검토와 심의를 받게 돼 있으나 주최자가 없는 경우 선제 안전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국한한 행안부 등의 안전관리 매뉴얼로는 이번 참사를 예방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부각시켜 비판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다양한 위험 요인에 대해 이번 기회에 보완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을 다 점검하고 보완해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논의를 지켜봐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처럼 특정한 주최자가 없는 경우엔 경찰과 지자체가 책임을 외면해 '사각지대'가 생기는 구조라는 문제제기가 이미 7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미 2015년에 이 같은 주최자 없는 행사의 사고 발생 위험성을 명시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7년간 제도 개선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의미다.

실제 경찰청은 2015년 10월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에 발주해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공연법에서 규정하는 심의 대상은 지역 축제와 공연이고, 그 밖의 다중 행사에 대해서는 안전관리계획이나 재해대처계획을 수립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다중 운집 행사의 유형을 포괄해 정리하고 안전관리계획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관련 부처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시스템 마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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