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징후 곳곳에 있었다"...참사 못 막은 정부·지자체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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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징후 곳곳에 있었다"...참사 못 막은 정부·지자체 책임론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2.10.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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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운집 예상에도 범죄예방만 초점...사전대책 전무
"통행관리·교통통제 했더라면"...당국은 책임 회피 급급
오세훈 서울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핀 뒤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핀 뒤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1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가 벌어진 책임을 두고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좁은 골목에 10만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안일하게 대처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는 중이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젊은 층이 대거 운집할 것이 이미 예상됐고, 실제로 하루 전인 28일부터 수만 명이 몰려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시청이나 구청, 경찰에서 사전 대책을 세우지 않아 안전을 소홀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 측은 "이태원에서 주최 측이 있는 대규모 행사가 예정된 것은 아니어서 핼러윈에 대비해 따로 특별대책을 마련하거나 상황실을 운영하지는 않았다"며 "자치구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8일 여의도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 당시 10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해 인근 도로 통제와 안전요원 배치 등 안전대책을 수립해 실행한 것과 비교된다.

이태원을 담당하는 용산구는 핼러윈을 앞두고 27일 이에 대비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구청장이 아닌 부구청장 주재였다.

주된 논의사항도 현장 안전대책이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방역 점검이었다고 한다. 10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도로 통제와 일방통행 등의 안전 대책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시 역시 안전관리를 위한 회의를 열거나 별도 지침을 내리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가 주최·후원하는 행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핼러윈 행사가 집중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일대엔 좁은 골목이 많지만 통행 관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용산구는 "27∼29일 28개 조, 직원 150여 명을 동원해 비상근무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또 지역 경찰과 관계기관이 핼러윈을 앞두고 모여 미리 회의까지 했으면서도 적극적인 현장 통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발생 사흘 전인 26일 경찰과 용산구, 지역 상인단체 관계자,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장 등은 간담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당시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가능성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종합치안 대책을 준비해 범죄·무질서 취약장소에 경력을 배치하기로 했으나, 클럽·유흥업소를 통한 마약범죄 단속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난 26일 이태원 상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범죄 단속 협조에 대한 당부가 있었다. 서울경찰청이 밝힌 핼러윈 축제 당시 동원 경력은 지역경찰 32명·수사 50명·교통 26명 등 총 137명이다.

정부의 안일한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발언한 것도 정부의 부적절한 상황 인식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불렀다.

핼러윈 축제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은 정부, 지자체가 대규모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시간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적극적인 질서 유지 활동에 나섰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가 일어난 골목은 폭이 약 4m 밖에 안 됐지만, 질서유지선 설치나 통행관리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려는 시민들이 몰려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정부·지자체·경찰이 협의를 통해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녹사평역 구간 도로를 일부라도 통제해 축제 공간을 열어놓고, 시민들이 골목으로 몰리지 않도록 유도했다면 압사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좁은 골목에 몰린 인파 때문에 소방 출동이 지연된 사실도 이런 지적에 무게를 싣는다.

사고 당일 현장 이태원을 방문했던 직장인 양모(33·남) 씨는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핼러윈때마다 이태원을 방문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인원들이 몰려왔다"며 "이태원 골목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 10시경이 되자 사람들이 2배로 불어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예전 핼러윈때는 경찰이 나와 폴리스라인을 치고 통제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인파에 가려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통행을 정리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이정도로 피해가 크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준 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여러 통행로를 미리 확보해 압사 같은 사고를 미연에 막는 게 최선"이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규모 군중 행사의 안전대책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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