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현 회장 ‘CP 협조요청’에 은행권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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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현 회장 ‘CP 협조요청’에 은행권 반발
  • 배나은 기자
  • 승인 2013.10.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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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호주머니 털어 CP 투자 손실 메꿀 수 없어”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기업어음(CP) 손실 구제에 ‘은행 협조’를 거론한 데 대해 은행들이 반발하고 있다.

현 회장이 실제로는 은행에 손을 내밀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돌리려고 ‘물타기’ 하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동양증권을 통해 팔린 ㈜동양과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의 회사채와 CP 규모는 모두 1조3000억원에 달한다. 4만명 넘는 투자자의 대부분이 개인으로, 투자금은 대부분 날릴 수밖에 없다.

이에 현 회장은 지난 3일 ‘호소문’에서 “은행권과의 대화는 법정관리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금번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CP 전체의 차환이 은행 협조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P 전체 차환의 규모는 분명 저희 일부 우량자산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라고 언급했다. 은행의 신용 보강을 받아 계열사 자산과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면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은행권은 일제히 ‘비상식적’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 자금은 국민의 예금이고, 더구나 산은은 국책은행이란 점에서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CP 투자 손실을 메워달라’는 요구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와 실제 협의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며 호소문 내용과 달리 현 회장 측으로부터 어떤 방식의 협조 요청도 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

현 회장이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은행 협조를 거론한 배경을 두고 은행들 사이에선 다른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은행이 도와주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식의 구도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현 회장은 지난 8월 말 홍기택 산은금융 회장을 만나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때 요청을 받아줬다면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와 CP를 상환해 투자자 피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라고 은행들은 보고 있다.

은행권이 동양그룹 여신을 줄인 탓에 회사채와 CP를 마구 찍어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동양은 ‘비올 때 우산을 빼앗는’ 은행 영업 방식의 피해자라는 결론으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동양시멘트에 640억원 여신이 있는 우리은행의 관계자는 “은행 측에 일언반구 없이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해 뒤통수를 때려 놓고 이제 와서 은행을 탓한다”고 지적했다.

현 회장의 ‘CP 협조요청’에 대해선 동양그룹 내부에서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CP와 회사채는 원칙적으로 투자자가 책임을 져야지 은행이 갚아줄 성질이 아니다”며 “모르고 그런 얘기를 꺼냈다면 경영인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고, 알고 그랬다면 투자자를 두 번 울리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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