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용대출 20년째 푸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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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용대출 20년째 푸대접
  • 김경렬 기자
  • 승인 2022.08.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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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신용대출, 주택관련 대출의 4분의 1 수준
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김경렬 매일일보 금융증권부 기자.

[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IMF가 뭔지 모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라 부모님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다. 윗집, 아랫집 금 거북이를 싸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금 한 돈의 의미도 몰랐다. 최근 시장 충격을 보면서 당시 금융위기를 짐작한다. 물론 어렴풋이.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던 국내기업은 외국자본의 차익실현에 휘청댔다. 외국투자자들이 이탈하면서 외환보유고는 동났다. 기업은 순식간에 파산했고 실직자들이 속출했다. 단기부채는 롤오버되지 않았다.

기업을 믿었던 은행들은 도산했다. 한빛은행, 한일은행, 한국상업은행, 한국주택은행 등은 부실은행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BIS자기자본비율 8% 미만 중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희박한 곳은 퇴출되고, 나머지 은행들은 합병해 살아남았다.

새로 태어난 은행은 달라졌다. 최근에는 대출 이자이익이 급증하면서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과거를 생각하면 통쾌하다. 대출 총 금액은 2020년부터 매년 110조원씩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한풀 꺾였지만 여전한 규모를 과시한다. 이자장사가 과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삿속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은행대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길 바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지금처럼 살아남았던 이유는 기업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처럼 규모가 큰 대출에 치중하고 있다”며 “이익을 꾀하는 장사치의 입장에서 당연하지만 신용대출 차주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대출을 살펴보면 포트폴리오는 과거와 다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상 가장 오래 전인 2000년 말 국민은행의 주택자금대출은 1조6639억원이다. 대출규모는 다음해 25조1818억원으로 15배 늘었다.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포함한 일반자금대출은 같은 기간 14조76억원에서 34조3675억원으로 2.5배 불었다. 상대적으로 소폭 증가다. 은행이 2000년대 초반부터 주택자금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20년이 넘은 올해 상반기 말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은 주택관련대출의 20~25% 수준에 그친다.

어찌보면 이러한 지표는 당연하다. 사람을 믿고 1000만원을 꿔주는(뀌어주는) 것보다 실물이 있는 주택담보대출로 5억원을 꿔주는 게 안전하다. 그게 바로 장사다. 이익을 내기 위해 큰 대출 유치에 혈안이 됐던 지난 20년 금융업체의 노력을 누구도 탓하지 못한다.

다만 중‧저신용자에게 돈을 내어 줄 곳은 없을 것 같다. 이 애매한 시장은 누구도 섭렵하려 하지 않는다. 업자들이 연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당국에서 권고한 만큼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려야하는 인터넷뱅크조차 난중지추 우량 차주를 찾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가계가 흔들릴 때 좀 더 자본력이 건강한 곳에서 신용대출 비중을 늘려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후선 창구들의 성장 활로를 터주는 것도 좋다. 온투업과 같은 성장산업에 금융권의 투자 진입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부실우려‧우회투자 등 비난은 쏟아지겠지만. 고객에게는 확실한 위안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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