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3세 경영의 희생양 된 '패싱'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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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3세 경영의 희생양 된 '패싱' 세대
  • 유현희 기자
  • 승인 2022.07.20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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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해 전 50대 중반 A부장이 갑작스런 퇴사 소식을 전해왔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새로운 업무를 경험해보겠다며 30년 가까이 해왔던 업무를 벗어나 영업직으로 이동한 후 불과 1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퇴사는 영업부서에 근무하면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긴 세월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그는 영업부서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이전의 지원부서로 자리를 옮긴지 불과 몇 개월만에 그는 사직서를 썼다. 의아했다. 새로운 도전에 실패했지만 기존 업무로 복귀한 후 사직서를 냈으니 주변에서도 의문을 표했다.

자세한 내막은 ‘세대교체’였다. 그는 팀장 대행으로 업무에 복귀했지만 뒤이은 인사에서 열 살 이상 어린 후배가 팀장으로 발탁됐다. 팀장 대행이었던 그는 졸지에 팀원으로 강등된 것이다. 후배의 앞길을 막는 선배라는 시선은 적잖은 부담이었고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MZ세대가 관리자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변에는 수많은 A부장이 존재한다. 일부는 생계 때문에 후배 팀장 아래에서 근무하지만 상당수는 회사를 등진다. 나이보다 능력이 우선임은 인정한다. 능력있는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승진하는 것은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이치다. 오히려 무능한 상사가 ‘라떼’를 외치며 부당한 요구를 하지만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승진하는 것을 부당한 처사로 여겨온 이들도 많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던 20대 중반의 나에게 가장 큰 적폐는 차장급 이상의 선배들이었다. 일부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당수는 ‘직급이 깡패’였다. 그들은 실무를 하지 않았다. 지시만 할 뿐. 가끔 포장 업무도 했다. 여기서 포장이란 선물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말단들이 하는 업무를 그럴싸하게 부풀려 상사에게 자신의 업무 성과인 것처럼 보고하는 포장을 비일비재하게 해왔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진급을 했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제치고 먼저 승진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대리가 과장이 되고 차장이 부장이 됐다. 무능한 이의 승진에 조직의 발전을 걱정하며 술잔을 기울일 때면 바로 위에 선배는 늘 “단지 선배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거다”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곤 했다. 그 말 속에는 선배라는 이유 외에 그를 존중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포함됐을 게다.

최근의 인사는 연배나 입사년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이다. 후배가 팀장이나 임원이 되는 인사가 더 이상 파격은 아니다. 단지 능력만 놓고 경쟁하는 것이라면 후배의 승진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거나 후배의 앞길을 위해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도 있다.

그러나 일부 기업에서 이뤄지는 인사 ‘패싱’은 아쉽다. 능력보다 후계구도를 위한 행보로 보여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3세 경영을 맞이했다. MZ세대인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그들과 연배가 차이 나는 이들의 인사 ‘패싱’이 심각하다. 그리고 패싱되는 이들의 상당수는 나와 비슷한 X세대다. 최근 만난 B팀장은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했다. 인사에서 후배가 팀장으로 발탁되자 후배를 위해 이직을 결정 했단다. 이 회사 역시 3세 경영을 목전에 뒀다.

군대 사병처럼 세월이 흐르면 진급하는 것이 옳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사의 목적이 회사의 발전과 능력 있는 이에 대한 발탁이 아닌 승계 등의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직의 인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면 한번 쯤 지금 검토하는 인사가 조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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