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르는 ‘경찰 체력 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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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경찰 체력 검정’
  • 허영주 기자
  • 승인 2013.09.11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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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 “운동할 시간 안주면서 점수 매기면 땡?”

▲ 지난해 1000m 달리기 체력검정 중 숨진 故손정환 경사(44)의 영결식이 그해 10월 24일 오전 전북경찰청에서 치러진 가운데 유족들과 동료들이 손 경사가 근무했던 사무실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전북경찰청 제공>
[매일일보] 체력 검정을 받던 경찰관이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경찰청이 경찰 체력 검정 제도에 대한 정비 등 관련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어 일선 경찰들 사이에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A(44) 경사는 1000m를 완주하고 나서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전북경찰청 소속 손모(44) 경사가 1000m 달리기를 하다 숨졌고, 2011년 경남 창원에서 1000m 달리기를 마친 한 경찰관이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놓인 적이 있으며 2010년에도 인천과 수원에서 체력 검정 달리기를 하던 경찰관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매년 체력 검정 때마다 이런 류의 사고를 접하게 되는 일선 경찰관들은 인사고과에 점수를 반영하는 식으로 체력 검정을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한다.

일선의 한 간부는 “격무에 시달리는 일선 수사부서나 파출소 등 교대근무제로 운용되는 근무지의 직원은 평소 운동할 틈이 없다”며 “체력 검정을 실시하지 않던 때 범인을 못 잡은 것도 아닌데 현장 실정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찰들은 이처럼 무리하게 체력 검정을 받다 쓰러지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는 것에 대해 부서별 업무 강도와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체력 검정을 강제하고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현 제도가 문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0년부터 매년 경찰관들의 기초체력 향상을 위해 시행된 대한 체력 검정 제도는 종목은 1천m 달리기·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악력 등 4종류로 구성돼 있으며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돼 승진 여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찰관들은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특히 경정급 이하의 경우 근무평정 총점 50점 중 ‘직장훈련’ 항목에 체력 검정 점수가 포함된다.

1등급은 0.833점, 2등급은 0.667점, 3등급 0.50점, 4등급 0.333점이며 부상 등 특별한 사유 없이 불참한 사람은 0점 처리된다.

이렇게 점수 매기기로 체력 검정을 강제하기보다 원래의 목적대로 평소 기초 체력 관리에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경찰관은 “체력 검정을 폐지하고 체력단련비를 지급해 지출 내역을 보고받거나 가까운 시설에서 정기적으로 운동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검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초체력 증진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경찰청은 1000m 달리기를 다른 종목으로 대체하는 방안이나 현재 등급제로 시행하는 1000m 달리기를 ‘통과’제로 바꾸는 등 개인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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