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은행 이자장사 콧노래 대신 취약계층과 고통 분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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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행 이자장사 콧노래 대신 취약계층과 고통 분담을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승인 2022.05.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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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자신에게 돈 3000더컷을 빌린 안토니오가 약속대로 돈을 갚지 않자 “당신이 돈을 갚지 않는다면 빌려 간 돈의 액수만큼 당신의 심장에서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떼어 가겠다”라고 고집하다 파멸을 맞게 된다. 돈을 빌린 안토니오에겐 희극으로 돈을 빌려준 샤일록에겐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야기는 순전히 꾸며낸 것으로 역사적으로 유대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셰익스피어는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그것은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 유대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중세시대 베니스엔 ‘이자 금지법’이 존재했지만, 당시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 교인들 간에 이자를 받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고, 그 바람에 금융업은 이교도인 유대인의 몫이 된 것에 불과하다.

요즘 한국에선 은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하다 못해 불만이 커지고 은행은 지탄의 중심에 서 있다.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가 4번에 걸쳐 1%포인트 오르는 동안 은행들이 예금금리보다 대출 금리를 더 많이 올리는 ‘이자 장사’를 한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5대 금융지주회사의 올 1분기(1∼3월) 순이익이 처음으로 5조 원대를 넘어서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올해 가계대출이 3개월 연속 줄었는데도 은행들이 시장금리 상승에 편승해 재빠르게 대출 금리를 끌어올린 영향이 크다. 지난 4월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총 5조2,362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NH농협금융만 순이익이 -1.34%로 소폭 줄었고 다른 금융지주 4곳은 각각 8.0∼32.5% 증가했다. 

특히, 5대 금융지주회사의 이자 이익은 11조3,385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1∼3월) 총합인 9조7,582억 원보다 16.2%인 1조5,803억 원이나 증가했다.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1.72%(신규 취급액 기준)로 2019년 6월(1.78%)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로 오르는 등 시장금리가 오르자 은행들이 발 빠르게 대출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대마진이라고 불리는 예대금리차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처럼,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받는 대출 금리와 예금자에게 주는 예금금리 간 격차로 은행 수익의 원천이다. 시중은행도 기업이다 보니 이익을 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대출 금리는 각종 명목으로 가산금리까지 붙여 높게 받고, 예금금리는 생색내기 정도만 올리고 있다. 게다가 은행의 대출 가산금리가 적정한지 살펴봐야 할 금융 당국은 그저 뒷짐만 지고 있다. 은행의 역대급 실적 뒤엔 가계의 고통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29일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를 보면 올 3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98%로 한 달 새 0.05%포인트 높아졌다. 2014년 5월 4.02% 이후 무려 7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88%에서 3.84%로 0.04%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5.33%에서 5.46%로 0.13%포인트 올랐다. 2014년 7월 5.59% 이후 무려 7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기업 대출 금리는 연 3.39%로 지난 2월 연 3.37%보다 연 0.02%포인트 높아졌다. 2019년 9월 연 3.42%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대기업 대출 금리는 연 3.12%에서 변화가 없었고,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연 3.59%에서 연 3.57%로 연 0.02%포인트 떨어졌다. 기업 대출과 가계대출 금리를 모두 반영한 예금은행의 전체 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 평균은 지난 2월 연 3.51%보다 연 0.01%포인트 낮은 연 3.50%로 집계됐다. 지난 3월 기업과 가계대출 금리가 모두 올랐지만, 금리가 낮은 기업 대출이 전체 은행권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예금) 금리 평균도 연 1.70%에서 연 1.74%로 연 0.04%포인트 상승했다. 예금은행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마진은 연 1.76%포인트로 지난 2월 연 1.81%보다 연 0.05%포인트 축소됐다. 신규 취급 기준이 아닌 잔액 기준으로는 총수신 금리(0.96%)가 0.03%포인트 오른 데 비해 총대출 금리(3.28%)가 0.08%포인트 올라 예대마진(2.32%포인트)이 0.05%포인트 확대됐다. 이는 2019년 3월의 2.32%포인트 이후 3년 만의 최대폭이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예대마진으로 쉽게 돈을 번다는 지적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금융권의 이자 이익 규모는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많다. 이는 주식과 부동산에 머물던 자금이 은행으로 돌아오면서 대출 재원이 많아진 상태에서 예대마진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은행의 6개월 이하 정기예금은 1년 만에 55% 증가했고, 올해 들어 예대마진 폭은 두 달 만에 0.3%포인트나 증가했다. 금융권의 대규모 이자 이익은 은행의 영업력 때문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유리한 자금 흐름과 금리 결정 구조 덕분이었다.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는 것은 은행들이 싼 금리를 주고 자금을 유치해 비싼 금리를 붙여 빌려준다는 의미다. 그만큼 수익성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예금자의 이익은 줄고 대출자 부담은 늘어난다. 최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수신금리 인상과 함께 고금리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따른다. 게다가 4%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혜택을 느끼지 못해 ‘착시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금리상승과 예대금리차 확대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뛰는 물가 상승세를 감안한다면 연내 한국은행이 최소 2~3차례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렇듯 시중은행들이 호황을 누리는 것과 달리 가계는 이자 부담으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매)’과 ‘빚투(빚내서 투자)’ 여파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전체 가계대출 규모는 작년 말 1,862조1,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상태에서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3조 원이나 늘어나고 가구당 연간 88만 원에 이르는 이자 부담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며,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6조4,000억 원이나 증가한다. 지난해 최대실적으로 이미 성과급 잔치를 치른 은행들이 또다시 이자 수입 늘리기에 급급한 것은 금리 인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탈무드’시대에는 대금업(貸金業)이란 것 자체가 유대인 사회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시는 농경 사회였고 몹시 가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 우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얼마나 증오하고 멸시하고 업신여겼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일 누가 어떤 사람에게서 돈을 빌렸을 경우 돈을 빌린 쪽에서는 그 돈이 틀림없이 되돌아올 것을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탈무드’에 의하면 아무리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줬더라도 채무자에게 그 의복 한 벌뿐이 없다면 그것을 취해서는 안 되었다. 접시를 담보했어도 그것이 하나밖에 없다면 취하지 못했다. 또 집을 담보 했어도 그 사람이 길거리로 나 앉아 지내야만 할 처지라면 그 집을 차지하지 못했다. 단지 하나밖에 없는 경우라도 사치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일 경우에는 예외였다. 그러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빼앗지 못했다.

코로나19와 긴축의 여파로 자영업자 등이 온갖 고통을 당할 때 금융지주들은 짭짤한 고수익 이자 장사로 휘파람을 분 셈이다. 이러한 금융지주들의 집단 이기주의 행태는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초대형 복합 위기)에 따른 부실 후폭풍을 감안하지 않는 것으로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은행업은 지급 결제와 신용창조 기능을 통해 국가 경제에 돈을 흐르게 하는 일종의 기간산업이다. 정부가 은행에 독점적 영업권을 주는 것은 이익 극대화가 최우선 목표인 일반 기업과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임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1,862조1,000억 원에 이르는 가계대출 가운데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909조2,000억 원에 달한다. 총부채상환비율(DSR) 40%를 초과하는 ‘고위험 가구’도 38만 가구에 이르고, ‘영끌’과 ‘빚투’에 나섰던 30대는 소득 대비 대출 비율(LTI)도 280%에 달해 이자 폭탄을 감내하기 힘들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 부실은 고스란히 가계로 전이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금융지주들이 할 일은 이자 장사에 콧노래를 불 때가 아니라 금융 취약계층과의 고통 분담이다. 금융지주들은 대출 경쟁을 중단하고 건전성을 최우선 잣대로 설정하고 업권별 부실 실태를 정밀 파악해 가계대출이 시스템 교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유연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격차를 해소하고, 필요할 때 가산금리가 적절한지 검토하고 담합 요소를 점검할 수 있도록 예대금리차 공시제도 도입을 서두르고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가 지난 4월 21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전망을 기존과 같은 ‘Aa2, 안정적’으로 각각 유지했지만, 한국의 재정 적자가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구체적인 수입 확대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진국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와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인구 고령화가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할 만큼 국내 가계 부채가 급증한 데는 금융지주들의 책임도 적지 않았음을 명찰해야 함은 물론이다. 금융지주들은 ‘탈무드 정신’을 거울삼아 예대마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취약계층의 대출 원리금 부담을 줄이는 대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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