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닫혀 있는 이건희”
상태바
“세상과 닫혀 있는 이건희”
  • 김상영 기자
  • 승인 2005.09.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준만 교수 “비판세력 ‘관리’만 할 뿐 ‘소통’ 외면”

유년시절 일본선 ‘이지메’ 한국선 ‘왕따’ 
"X파일 이후에도 현 경영전략 고수할 경우
부메랑 되어 삼성과 이건희 치게 될 것“

'안기부 X파일'이 폭로된 이후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X파일 녹취록 의해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지시에 의해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쪽에 불법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회장은 기아자동차를 부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악덕기업주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삼성이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 명목으로 금품을 상습적으로 상납해왔다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폭로까지 가세하면서 이 회장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본관 앞에서 '이건희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여는 등 이 회장과 삼성을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다.

X파일이라는 초특급 태풍과 맞닥뜨린 극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이 회장은 과연 어떤 해법으로 현 시국을 돌파해 나갈까. 한국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26일 세간의 이목을 끄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비판적인 글쓰기로 잘 알려진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가 쓴 '이건희 시대'(출판- 인물과 사상사)가 바로 그것.

강준만 교수의 저서 '이건희 시대'는 이건희에 대한 일방적 지지나 일방적인 반대가 아닌 중간자적 입장에서 이 회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본지는 X파일 이후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인간 이건희’의 면면을 강준만 교수의 ‘이건희 시대’를 통해 들여다봤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저서 '이건희 시대' 머리말에서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건희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이건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늘 혼자였던 이건희

이건희는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이병철과 어머니 박두율의 8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인 3남(아들 중 막내)으로 태어났다. 이건희 위로는 맹희, 창희 등 두 형과 인희, 숙희, 덕희 등 네 명이나 되는 누나와 여동생 명희가 있었다.

이건희는 출생 직후 사업에 바쁜 부모 곁을 떠나 경남 의령 생가로 보내져 할머니 밑에서 3년을 자랐다. 그는 1947년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마산, 대구, 부산으로 옮겨다니다가 5학년 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건희는 늘 혼자 지내다시피 했다. 이건희는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3년을 지냈다. 건희는 학교를 많이 옮겨다녀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일본에선 '조센징'이라고 이지메까지 당했다.

이건희는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아버지를 졸라 귀국해 서울사대부중에 편입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고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일본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것처럼, 사대부중에선 서투른 한국 발음과 무의식적으로 익혀진 일본식 태도로 인해 '일본놈'이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고 강 교수는 적고 있다. 일본에선 '이지메'로 한국에선 '왕따'로 학창시절을 보낸 셈이다.

이건희는 언젠가 "친구가 거의 없다. 성격도 그렇고 화제도 잘 맞지 않다. 사회에 나와서 그럴 시간도 없었다. 유치원 때부터 혼자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계를 사랑한 편집광

머리가 좋고 고독한 사람은 기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희도 그런 경우다. 그는 '기계와의 사랑'에 빠진 첨단 기술 지향적 인간이라고 강 교수는 적고 있다.

이건희 자신도 어려서부터 전자와 자동차 기술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건희는 일본 유학 시절 새로 나온 전자제품이 눈에 띄면 사다가 뜯어보는 것이 취미였다.

강 교수는 이건희의 '기계와의 사랑'이 반도체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고 적고 있다. 이건희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74년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 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반도체 신화는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이건희의 신념과 체질의 산물이라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이같은 이유를 들어 강 교수는 이건희를 '천재'라고 명시했다.

강 교수는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보는 천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건희는 천재이거나 천재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이 방면의 천재는 공부 실력으로 따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 보는 능력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적고 있다.

강 교수는 ‘이건희 천재론’을 거론하면서 칭찬이라기 보다는 결례일 수 있다고 조심스러운 뉘앙스를 내비췄다. 천재형 인간의 인간적 형태는 너무 유별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사실 천재는 고독하며 편집광적이다. 인간관계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천재에게는 탁월성이 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이건희 천재론’은 이 회장의 강한 집중력과 집착력을 바탕에 깔고 있다. 많은 이들도 이건희의 집착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이건희의 엽기적인 집념과 승부욕은 그의 과거 행적에서 잘 드러난다. 93년 해외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는 “일본의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테이프 45개를 수십번 봤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건희는 93년 7월 오사카에서 열린 중앙일보사 간부 대상 특강에선 “미국 출장을 갈 때 필요하다 싶으면 서울에서 LA까지 12시간 동안 중앙일보를 본다. ‘중’ 자에서 끝 페이지 광고까지 한 글자도 안 빼놓고 읽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이건희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솔직히 ‘엽기적’이라는 느낌을 준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건희가 편집광적이라고 하는 건 부정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밝혔다. 일례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9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인텔 회장 앤드류 그로브는 ‘편집광이 살아남는다’는 책을 내면서까지 기업경영에 대한 ‘편집광적 집착’을 찬양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고 강 교수는 적고 있다.

이같은 이건희의 편집광적인 성격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고독에 익숙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람은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고독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고독이 견딜 수 없는 고문이겠지만 고독에 익숙하게 되고 나중엔 그걸 즐기게까지 된다. 라이프 스타일도 그렇게 형성되기 마련이어서 고독을 방해하는 생황을 귀찮게 여기고 짜증까지 내게 된다.

이건희의 취미는 ‘연구’와 ‘생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걸 좋아했다. 그의 취미인 스포츠가 운전과 승마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골프도 무척 좋아하지만 90%를 혼자 친다고 한다. 혼자 해야 골프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고 강 교수는 적고 있다.

이렇게 늘 혼자이다 보니 이건희는 대인 관계가 서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89년 오효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개 키우면서 얻은 철학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개는 절대 거짓말을 한하죠. 배신할 줄도 모르죠’라고 답했다”

도대체 무슨 배신을 얼마나 당했길래 그렇게 말하는 걸까 하는 의아심이 들긴 하지만, 위로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배신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달했으리라는 건 미루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고 강 교수는 분석했다.

특히 강 교수는 이건희의 독특한 언어 구사 방법에 주목을 했다.  “그가 말하는 ‘거짓말’ 이나 ‘배신’ 은 보통사람들의 인관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그가 말하는 배신의 감정은 세상으로부터의 격리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 그는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 교수는 적고 있다.

강 교수는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건 그가 의외로 세상사의 세부에 둔감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자신과 삼성에 대한 세간의 시각에 대해 그 내용과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니, 국내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삼성의 회장이 그럴 리가 있는가? 대통령이 거의 전지전능한 정보기구를 거느리면서도 ‘인의 장막’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유리돼 엉뚱한 판단을 내리듯이, 대재벌 총수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강교수는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이 “회장은 자신이 보아야 할 것,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의 30%밖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어떤 건 100% 가까이 알지만, 또 어떤 건 0% 가까이 모를 수도 있다.

이건희는 자신이 평소 알던 것과 괴리가 있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배신감을 토로하지만, 사실 그건 자신이 기업경영은 어떤지 몰라도 세상살이의 이치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걸 말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면서 “미국의 교육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야 말로 대통령과 대재벌 총수는 물론 모든 지도자들이 유념해야 할 최상의 교훈일 것이다”고 충고했다.

한편 강 교수가 ‘이건희 시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뒤에 이른바 ‘도청 X파일 사건’이 터졌다.

X파일과 관련해 강 교수는 “앞서 삼성과 이건희가 앞으로 계속 ‘레드 오션(피 튀기는 경쟁.투쟁이 지배하는 시장)’ 전략으로 버틸 수 있다면 그것도 그쪽 입장에선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건(X파일)이 터지고 말았다.

만의 하나, 삼성과 이건희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에서 잘 마무리 짓는 다면, 오히려 그런 해결 방식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삼성과 이건희를 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한 삼성과 이건희는 ‘블루 오션(경쟁 없는 시장 창출)’ 전략으로 삼성과 이건희가 전면 전환하지 않는 한 삼성과 이건희는 물론 한국의 불행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서 ‘관리’가 아닌 ‘소통’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 저서‘이건희 시대’(출판: 인물과 사상사)

<저자, 강준만은 누구?>

한국적인 비평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 숱한 이슈를 제공하며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문 영역과 교양 영역, 학문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한 사색을 해오던 그는 이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화두'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학문의 주체성과 현장성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임은 물론이다.

그는 이 책에서도 맹목적 지지와 반대라는 한국적인 그늘에서 벗어나 '이건희'를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희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삶과 꿈을 해부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