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부의 국민연금 대표소송…‘연금사회주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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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부의 국민연금 대표소송…‘연금사회주의’ 우려
  • 조성준 기자
  • 승인 2022.01.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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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등 인사로 구성된 수책위, 전문성·객관성 우려
수책위, 정부의 경영 개입 위한 합법적 도구될 수도
지난 20일 열린 경제단체-복지부 비공개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는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왼쪽),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사진=대한상의 제공
지난 20일 열린 경제단체-복지부 비공개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는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왼쪽),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사진=대한상의 제공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대표소송 결정 전임권을 부여하려고 하자 재계와 학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책위로 일원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은 다음 달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2018년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취지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설립됐다. 운용 전문가뿐 아니라 경영·노동계 등이 추천한 9인으로 구성되며 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수책위는 지금까지 기업의 배당정책이나 임원 보수한도 등에서만 ‘비경영참여 주주제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안건이 의결되면 법령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나 개선이 없는 사안,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 대응에 관한 사안, 산업안전 관련 리스크 대응에 관한 사안, 이 밖에 기금운용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 모든 중점관리사안에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재계는 이와 관련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7곳은 지난 20일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대표소송 관련 지침 개정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재계는 기금의 수익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기금운용본부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책위가 대표소송을 맡을 경우 정부 입장이 투영될 뿐 아니라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정권의 이해관계와 시민단체의 입김에 휘둘리는 행태를 보여 왔다”며 “기업의 정권 눈치 보기가 심화하고 자칫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이후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이 늘었는데, 수탁위에 소송권한을 일임하면 그 강도가 더욱 거세질 것은 자명하다.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지난해 10월 기준 163조8000억원으로 국내 주식시장의 6.7%를 차지한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는 지난해 말 기준 257사로, 삼성전자·SK텔레콤·현대중공업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지분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막강한 지배력이 비해 수책위 구성원이 노동계 편중 인사로 꾸려지는 것도 우려를 낳는 부분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함께 설립된 위원회이면서 구성원까지 노동계 인사 중심으로 꾸려지면서 수책위가 자칫 기업의 경영을 큰 틀에서 진단하는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앞장서는 국민연금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크다. 수책위에 권한이 일임되면 결국 정부 입김이 그대로 작용해 반기업 정서가 정책에 적극 투영될 것이라는 우려다.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대형 연·기금이 자국 기업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책위가 정부의 본격적인 기업 길들이기 제도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5일 한국산업연합포럼이 개최한 제16회 산업발전포럼에서도 국민연금을 성토하는 각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국민연금 국내 주식 총투자 금액은 165조원이고, 우리나라에 상장된 기업 2200개가 모두 다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대표소송 책임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면 (국민연금이)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있고, 적극적인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대표소송 제기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 국민연금 손실이 발생한 경우 주인인 연금가입자들은 대리인인 국민연금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재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자 상황을 관망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내달 처리될 것으로 예상한 해당 안건이 시일을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다음 기금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다음 기금위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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