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년호 특집] 건설업계, 혁신막는 군대식 기업문화서 탈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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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년호 특집] 건설업계, 혁신막는 군대식 기업문화서 탈피해야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2.01.0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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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서 기회 찾으려 조직문화 바꾼 건설업계
호칭 파괴, 수평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 기대
본사와 현장 큰 괴리… 갈 길 여전히 멀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협력사 직원들이 아이파크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C현대산업개발 제공
HDC현대산업개발과 협력사 직원들이 아이파크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C현대산업개발 제공

[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2019년 전후로 건설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미‧중 무역 전쟁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건설산업 침체가 지속, 자연스럽게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바꾼 부분은 조직문화였다. 다른 업종에 비해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건설업계의 분위기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수평적 관계에 따른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 과거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직급 대신 ‘매니저’, ‘프로’, ‘님’ 등 수평적 호칭으로 바뀐 건설사가 많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롯데건설은 건설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선임·책임·수석의 체계를 도입했다. 현대건설은 사원과 대리를 매니저로 과장·차장·부장을 책임매니저로 변경했다. GS건설도 부·차장급은 책임, 과장 이하는 전임으로 바꿨다. 

DL이앤씨는 부장급 이하 7단계로 촘촘했던 직급을 4단계로, 임원 직급 체계도 5단계에서 3단계로 각각 축소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모든 팀원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SK건설 역시 부장 이하 호칭을 프로로 바꿨다.

현직 직원들의 반응은 크게 갈렸다. A건설사 직원은 “호칭이 변한 이후 구성원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는 더욱 많은 인재의 유입을 가속해 궁극적으로 건설업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건설사 직원은 “건설사 하면 흔히 군대식 조직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어 거칠고 경직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례가 많은데 생각보다 선진화된 경영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며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긴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C건설사 직원의 의견은 비슷한 듯 조금 결이 달랐다. 그는 “탑다운(상명하복) 업무방식을 쇄신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면서도 “문제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생각을 가진 직원들이 많다. 단순히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아서가 그런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고인물’(능력 없는 임원)과 ‘젊꼰’(젊은 꼰대)들이 사내 분위기를 정체시키고 있다. 정작 그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며 “회사는 이들에게 유독 관대하다는 점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부연했다.

현장 경력이 짧지 않다고 밝힌 D건설사 직원은 “수평적 문화는 본사에서나 통용되는 얘기다. 현장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긴박한 건설현장의 특성상 지휘체계와 책임소재가 명확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덧붙여 “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느끼고 있으나 선진국의 조직문화라고 해서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차용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조직 내에 공고해진 ‘권위’와 ‘질서’의 벽을 허무는 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며 “조직문화의 변화는 당장 효과도 없고, 측정도 어렵지만, 강력한 미래 성과 예측 지표”라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현장과 본사냐에 따라 팀에 따라 구성원에 따라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에 차이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하다”면서 “조급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임직원들에게 변화가 내재화될 수 있도록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변화의 시작은 최고경영자(CEO)부터라고도 했다. 한 교수는 “CEO가 명확한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흔들림 없이 실천해야 한다”며 “CEO의 말 한마디로 행동 하나로 조직원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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