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포크배럴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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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포크배럴의 진화
  • 송병형 기자
  • 승인 2021.12.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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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18대 대선을 1년여 앞둔 2011년 7월의 일이다.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한 달 만에 ‘포크배럴(pork barrel)’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였다.

박 장관은 당시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포크배럴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고 재정지출을 지속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등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며 “국가재정의 대차대조표도 생각하지 않고 균형감을 잃은 채 과도한 지출을 부추기는 정책은 표만 의식한 무책임한 논의라는 비난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내년에 대선이 있지만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처럼 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확실히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포크배럴은 직역하자면 돼지고기를 담는 통으로, 미국 정치에서 선심성 예산 확보 경쟁을 벌이는 정치인의 행태를, 돼지고기를 두고 다투는 노예에 빗대 꼬집는 표현이다. 비하 성격이 짙은 표현인 까닭에 당시 정치권은 발끈해 박 장관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여당에서조차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복지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는 걸 포크배럴이라고 하는 건 저질스런 비유”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정치권의 무분별한 ‘표퓰리즘’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0여년이 지나 20대 대선 선거전이 한창인 지금, 표심을 겨냥한 선심정치는 한 단계 진화한 느낌이다. 나랏돈을 끌어다 복지를 확대하는 과거 방식을 넘어서 직접 유권자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1년짜리 시한부 정책이라는 신박한 방식까지 등장했다.

당정은 지난 20일 내년 공시가격이 급등해 보유세, 건보료 등 국민 부담이 급증하는 것을 덜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보유세 동결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같은 날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는 내년에 전월세 계약을 직전 계약 대비 5% 이내로 올린 뒤 2년간 유지하는 임대인에게 양도세 비과세 특례 적용 요건인 ‘실거주 2년’ 가운데 1년을 채운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당은 청와대와 정부의 반대에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밀어붙일 기세다. 대선 전이냐 대선 후냐는 문제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당장 ‘대선을 앞두고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잘못된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면 제대로 된 해법을 미리미리 준비해 국민에게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선거가 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뒤집는 것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워 시장 혼란을 부채질 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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