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지성이 머릿속에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상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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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지성이 머릿속에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상황인지'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11.26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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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봉착한 '프레임 문제', 인지심리학이 아닌 상황인지론으로 새롭게 접근해야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인지심리학과 초기 인공지능 연구는 실체화된 우리 인간들이 실제의 흐름(예컨대 상황의 변화)에서 면제받은 영역에 좌정한 다음, 지나가는 진리들을 덥석덥석 붙잡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이런 환상은 이를테면 '인간중심적 실체주의'의 덫에 물린 셈이다.-- "머리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지성의 조건은?" 중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형태의 지식'을 머릿속 '실체'로 상정하고 그것이 발휘되는 것이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지각관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물려받은 유산이며, 이는 현대의 주류 심리학 연구인 인지심리학의 사상적 기반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대의 인공지능연구는 인지심리학에 기초해 막대한 지식을 컴퓨터에 담아 여러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인지심리학의 관점은 오늘날 인공지능이 마주하는 프레임 문제(frame problem)를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서 프레임 문제란 ‘어떤 행위에 관련된 것과 관련되지 않은 것을 환경 속에서 구별하는 문제’를 말한다. 인간에게는 행위에서 환경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행위에 관한 것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이 작업을 인지심리학적을 기반으로 설계된 로봇이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인지심리학적 '지식'을 부여받은 로봇은 현실 속 넘쳐나는 막대한 정보 중 현재 행위와 관련 있는 이른바 '상식'을 픽업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을 지각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추론,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인지심리학적 관점, 혹은 '표상주의'의 관점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고정된 '스냅사진'이 아니라 주변과 섞이고 늘 새롭게 바뀔 수 있는 '스케치' 같은 무엇이다.

인간은 주변의 요청에 따라 바뀌는 존재일 뿐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창의에 의해서 스스로를 바꾸어 가는 존재다. 인간과 세상은 서로 끝없는 피드백(feedback) 과정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환경을 객체가 아닌 우리와 함께 역동하는 상호관계 자체로 보는 것이 상황인지론의 관점이다.

이 책 <상황인지>는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의 생태주의심리학, 야콥 폰 윅스퀼(Jakob Johann von Uexküll)의 생물학적 관점 등 상황인지론에 입각한 새로운 환경 개념을 살피며, 이 새로운 환경 개념이 기존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연구가 마주한 프레임 문제에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는지를 들여다 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I, 로봇 연구 등 여러 분야에서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지식'과 '환경'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 박동섭은 독립연구자이다. '○○ 연구자'라는 제도화된 아이덴티티로 살아가는 일의 한계를 실감하며 '아이덴티티 상실형 인간'으로 살고 공부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비고츠키를 연구하며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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