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자존심 상하는 산업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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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자존심 상하는 산업외교
  • 이재영 기자
  • 승인 2021.11.0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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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미중 무역분쟁의 악영향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간 견제하면서 이를 명분으로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파장이 한국에 미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역할이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난다.

무역분쟁은 양국이 이권을 챙기는 명분이 되고 있다. 기술 패권경쟁의 경우 미국이 중국의 기술 정보 침해를 방어한다는 목적으로 로컬 빅테크 기업을 우대하는 경향이 보인다. 또한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계 기업에 혜택을 늘리면서 은근히 현지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가해지는 반도체 거래 정보공개 요구다. 조 바이든행정부는 장기화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의 원인을 따진다면서국내 반도체 기업에 고객사와의 거래 정보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급 문제가 커진 차량용 반도체는 MCU로 국내 양사가 주력하지 않는 범용제품에 해당한다. 미국정부가 그 점을 모를 리 없음에도 정보공개 압박을 가하는 것은 현지 투자를 종용하는 우회수단으로 읽히고 있다. 사실상 강국의 횡포에 가깝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우방국이지만 국내 철강업에 대한 수출 쿼터제를 적용하는 등 경제에 한해 과연 우방국이 맞는지 의아한 사례가 트럼프행정부 이후 부쩍 늘어났다. 국내 기업을 보호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역할은 정부의 중책이지만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 우리 정부도 차량용 반도체 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차 등과 머리를 맞댄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불렀었다. 엄한 기업 잡는다고 미국만 나무랄 수 없는 처지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코로나19 불황 속에 강력한 글로벌 시장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격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외교 측면에서 미국의 강제적 정보공개 압박은 국가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정부가 기업 규제 등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정책을 펼치면서도 유독 외교문제가 걸린 산업이슈에는 작은정부가 된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해진 3분기에 르네사스와 NXP는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NXP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122%나 증가했다. 양사는 수급차질이 발생한 MCU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메이저 기업이다. 본래 MCU시장은 수익성도 저조하고 공급경쟁도 심했지만 공급차질 이슈 이후 수익률이 유망한 시장으로 돌변했다.

MCU 업체들이 높은 이익률을 거두는 것은 완성차 업체와 칩 공급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급이 달리는 상황을 이용해 가격을 높이는 작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당연히 공급차질이 장기화되는 반사이익도 이들 몫이다.

그러면 공급차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따져야할 대상은 이들 업체로 좁혀진다. 그럼에도 공급부족 문제를 두고 따져 묻기 위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나란히 줄세우는 의도가 불순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자국 기업이 피해를 입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상황의 흐름에만 맡기는 듯한 우리 정부에게 느낄 기업들의 허탈감도 적지 않을 듯 보인다.

탄소중립 이행 정책이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등 최근 국제적 이슈에 대해 우리 기업은 늘 당하기만 하는 형편이다. 기업들이 겹겹이 중첩된 원자재, 물류난 등 부담으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경제정책에 반영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가 글로벌 외교 지형 속의 처신만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결국 산업경쟁력이 약해져 국력도 상실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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