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코로나 청구서
상태바
[데스크칼럼] 코로나 청구서
  • 송병형 기자
  • 승인 2021.10.06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위드 코로나’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가 부른 경제적 후유증은 이제부터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정확히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펼쳤던 경제정책이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청구서는 인플레이션이다. ‘일시적 현상이니 걱정 말라’던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미국시간 지난달 29일 “당황스럽다”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엿새 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앞으로 수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며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몇 달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에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코로나로 인해 억눌려온 수요가 ‘위드 코로나’를 목전에 두고 폭발하는 상황에서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델타 변이발 팬데믹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이 공급 부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판을 키웠다. 그래서 연준도 테이퍼링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구서 내역이 연준의 예상을 벗어난 듯하다. 인플레이션이 연준 예상보다 오래간다면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등 연준의 긴축 일정이 꼬일 수 있다. 아직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니 연준으로선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도 당국이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대응에 나서겠다고 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국제 금융시장의 여건 변화에 대비해 대외 부문 전반에 걸쳐 회색 코뿔소와 같은 위험 요인이 없는지 점검하고, 컨틴전시 플랜을 미리 보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했다. ‘회색 코뿔소’란 충분히 예상하고도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을 의미한다.

같은 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그간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저금리와 자산시장 과열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각 경제주체들이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아 변동성이 큰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자칫 ‘밀물 들어오는데 갯벌로 들어가는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이튿날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국내에서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존재하는 등 대내외 리스크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변동성이 확대된 외환,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등 시장에서 ‘퍼펙트 스톰’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같이 기업과 가계의 금융환경 악화, 기업의 투자환경 악화를 예고하는 발언들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니 국내 금융환경도 내년 더 악화될 게 뻔하다. 그런데 하필 정권교체기다. 대선후보들이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누가 당선되든 문재인 정부가 남긴 청구서 처리에 급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