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병실에서 한국 정치 '하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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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병실에서 한국 정치 '하나 되다'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9.08.13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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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다녀간 뒤로 화해 마당 조성, 문병 정치

[매일일보=최봉석 기자]

"민주화를 위해 큰 일을 하신 분이라 더 사셔야 한다"(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제는 화해할 때도 됐다"(김영삼 전 대통령)

"간병하는 이희호 여사에게도 각별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나라를 위해 아직도 할일이 많다"(김형오 국회의장)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이분과 함께하고 싶은 국민이 많다"(공성진 최고위원)

투병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주 달리던 폭주기관차처럼 충돌 직전으로 치닫던 여의도 정치권에 '화해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및 건강 악화 이전, 현 정권의 핵심부를 겨냥 "독재자"로 지칭하는 등 노무현 서거 정국 전후로 현 이명박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형성했다.

야권 일각에선 DJ의 건강 악화가 장기화되자, "현 정부가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는 다소 설득력 있는 분석까지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DJ의 입원은 자칫 이명박 정권 후반기의 '한국사회 정치권'을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지게 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유력인사들의 병문안이 잇따르면서 외견상 정치권의 대충돌은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한나라당, 민주당, 동교동계, 상도동계, 친이계, 친박계ㆍ친노세력은 하나된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위한 여야 정치인들의 발길은 치열한 여야 공방으로 여의도에 포연이 가득했던 12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무소속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유시민 전 장관, 민주당 천정배, 추미애 의원,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이 병문안을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최근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초청강연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던 정동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위해 일정을 중단하고 이날 새벽 입국한 뒤, 오전 9시50분께 부인 민혜경씨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 40여분간 이희호 여사와 만나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다.

정 의원은 이 여사를 면담한 뒤 "개인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김 전 대통령을 따라서였다"며 "1973년 10월에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앞장섰다가 잡혀서 마포경찰서에 한 달간 구류됐던 것이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계기가 됐다"고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정 의원은 또 "정치 입문 후에는 운이 정말 좋았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부였다"며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남북평화와 한반도 냉전 화해의 과업을 참여정부에서 계승하려고 노력했다. 쾌차하셔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시민 전 장관도 이날 오후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유 전 장관은 "나라의 큰 어르신이니까 얼른 쾌차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다"며 "내일이 김 전 대통령이 일본 납치됐다가 돌아오신지 36년째 되는 날이라는데 내일 일어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이희호 여사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건강해보이셔서 마음이 놓인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도 "내일, 36년 전 그날처럼 벌떡 일어나실 것 같은 기분"이라며 "온 국민이 같은 기분일 것"이라고 밝혔다.

추미애 의원은 "내일이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이 회복되는 날이 됐으면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또 "박정희 군부독재의 긴 터널을 김 전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 없이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 불굴의 의지가 병마를 이겨내는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이날 오후 병원을 방문해 "민주화를 위해 큰 일을 하신 분이라 더 사셔야 한다"며 "민주화로 나라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다. 아직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야 한다"고 기원했다.

"북한에 퍼주기를 하면서 여론을 호도했다"며 DJ에 날을 세웠던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병실을 찾아 DJ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화의 대들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외교 관계자들도 이날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반 사무총장은 이날 부인과 함께 오후 2시20분께 병원을 방문, 이희호 여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존경받고 있고 할 일이 아직도 많다"며 "하루 빨리 쾌차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반 총장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민주화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을 닦아놓았다"며 "국제적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하셨기 때문에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의 불씨를 화합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사람은 DJ의 '영원한 라이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지난 10일, DJ와 영원한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YS가 '쾌차'를 기원하며 '화해'의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께 DJ가 입원 중인 서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 병원을 깜짝 방문, 병원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는 6공 시절부터 오랫동안 경쟁자이자 협력자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한국에는 물론 세계에도 유례가 없을 특수한 관계"라고 언급, 이목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과는 애증이 교차했다"며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젠 화해할 때도 됐다"고 말해 사실상 '화해'의 뜻을 내비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후 의료진에게 "세상에는 기적이란 게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치료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김씨의 이 같은 화해로 두 사람을 따랐던 측근들도 '벅찬 감격'에 들뜬 분위기다.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 인사들의 연합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은 YS가 지난 10일 DJ를 문병하고 화해의 뜻을 밝힌 것과 관련, 11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이날 오후 2시30분께 김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다.

민추협 소속 김무성·김영진·이용희·이인제·이종혁 등 전·현직 의원과 김덕룡 공동이사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늦게나마 두 분의 화해가 이뤄진 것에 대해 벅찬 감격을 금할 수 없다"며 "진심으로 환영하다"고 말했다.

민추협은 "우리는 그동안 두 분의 화해를 계기로 하는 지역감정 해소를 가장 중요한 사업 목표로 삼고 활동해 왔다"며 "앞으로도 망국병인 동서갈등과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국민통합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추협은 아울러 "민추협 회원 모두의 마음을 모아 존경하는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바랐다.

DJ를 비난해온 한나라당 내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0일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독한 병세와 관련, 담당 병원인 세브란스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줄 것을 부탁했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이분과 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며 "세브란스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희태 대표도 "이는 공 최고위원의 말이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 의견임을 밝힌다"며 한나라당의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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