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책 중 만난 짝퉁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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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산책 중 만난 짝퉁 빌라
  • 전기룡 기자
  • 승인 2021.07.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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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전기룡 기자] 최근 산책 겸 동네를 둘러봤다. 마침 비가 그친 직후였고, 이사를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지리를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선선한 바람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어느새 집과 꽤 떨어진 빌라촌에 도달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초행길이기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걸었다. 한 빌라는 창문이 특이했고, 한 빌라는 출입문이 특이했다. 다른 빌라와 달리 택배 보관함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빌라는 이름이 특이한 곳이었다.

그 빌라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주택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빌라는 10대 건설사의 모그룹과 동일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 CI와 BI에 관심이 많아 적용된 서체부터 다르단 걸 눈치챘지만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후 집에 들어와 빌라를 전문적으로 분양하는 곳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봤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자 어김없이 건설사의 CI와 BI를 연상시킬만한 이름의 빌라들이 상당수 검색됐다.

문득 어린 시절 한창 유행했던 짝퉁 ‘퓨마’ 티셔츠가 떠올랐다. 퓨마 그림과 영어 스펠링(PUMA)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했던 그 티셔츠 말이다. 지금도 퓨마가 당구를 치는 모습의 ‘다마’(DAMA)티셔츠와 퓨마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적용된 ‘파마’(PAMA) 티셔츠가 기억에 남는다.

문제는 빌라와 티셔츠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짝퉁을 만들었다는데 있다. 짝퉁 퓨마 티셔츠는 목적이 희화화였다. 또한 누구나 그 티셔츠가 퓨마의 짝퉁이라는 점, 그리고 하나의 밈(Meme)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빌라가 짝퉁 브랜드를 적용한 목적은 포장과 계약이다. 오랜 기간 인지도를 확보해온 건설사의 CI와 BI를 도용해 보다 그럴싸한 빌라로 포장한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포장은 좀 더 수월한 계약으로 이어진다.

가격대 역시 문제이다. 짝퉁 유명 브랜드 티셔츠는 가격이 1만원대에 불과했다. 상대적일 수 있겠지만 어느정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수억원대의 빌라를 판매하기 위해 짝퉁 브랜드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남는다.

건설사들이 자신들의 CI와 BI를 관리하는데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건설사들의 브랜드가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피해는 브랜드를 도용당한 건설사와 짝퉁 빌라를 산 수요자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담당업무 : 건설 및 부동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노력의 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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