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무책임한 기업 행정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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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무책임한 기업 행정서비스
  • 이재영 기자
  • 승인 2021.06.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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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 대기업과 협력사 간 분쟁이 빈번한 이유 중 하나는 구두계약이 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들은 바로는 대기업이 협력사에 물량 주문을 늘릴 것이란 전망을 제시해 협력사의 증설을 유도해놓고 나중에 뒤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이 의도하지 않은 불황이나 사업 실패로 인한 자본 경색으로 계획을 바꿨다고 해도 협력사의 입장에서는 변명의 여지없는 갑질이다. 대기업은 계약 변경의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구두계약을 선호한다. 잘 되면 좋고 잘 못 돼도 리스크가 덜하기 때문이다. 상생과 동반성장이란 보기 좋은 친밀도를 미끼로 리스크를 헷지한다. 반대로 협력사는 증설로 인한 비용 손실과 증설 이후 지속적인 가동률 하락으로 회생이 어려운 타격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비단 민간기업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과의 거래, 행정서비스 중에도 갑질 사례는 종종 등장한다. 대기업과 협력사의 경우 관계가 틀어지면 거래처를 변경하기라도 하겠지만 정부에 밉보이면 사업체를 계속 영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민간의 사례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드물다. 기업들의 민원을 다루는 공무원의 태도에서 오만함과 갑질이 묻어나는 것은 물론, 앞서 대기업 갑을 사례처럼 계약을 바꾸는 행태도 전해 들었다.

행정 불이익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한 한 취재원의 사례다.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관계 당국의 허가를 받았는데 담당자가 변경된 뒤 관계 법령의 문제를 들어 계약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전임이 허술했거나 새로 맡은 담당자가 논쟁의 여지를 말소하고자 그런 것일 수 있다. 어쨌든 행정서비스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손해 보는 쪽은 사업자일 뿐 당국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계약 이면에 다른 사정이 있어 변경됐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이라면 기업은 행정 업무를 신뢰할 수가 없다. 이 사업자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상 계속해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분쟁을 밖으로 키울 수가 없었다. 억울하지만 울분을 삼켜야 했다. 국민 세금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게 본질인 행정이 이런 식이라니 대기업의 갑질 못지않다. 피해 당사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데는 오히려 공권력의 남용이 더 심하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기업 여론조사에서는 정부의 규제개혁정책에 대부분 불만족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 등 노동 및 기업 규제가 한꺼번에 증가해 규제개혁 체감도가 낮아진 것으로 풀이됐다. 불만족 이유는 보이지 않는 규제해결 미흡, 규제 신설 및 강화 응답이 주를 이뤘다. 현 정권 출범 초기에 규제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고 한다. 그것이 점점 낮아져 지금의 불만족에 이르렀다. 신규 규제는 정권 공약 사항으로 국민이 투표한 대의라고 볼 수 있으나 기업 체감도가 낮아진 데는 늘어난 규제에 비해 개선된 부분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행정 갑질 사례는 보이지 않는 규제에 속하는 셈이다. 이런 갑질은 고치기가 힘들다. 보수적인 대기업만큼이나 행정서비스 기관도 조직문화나 구성원의 사고방식에서 변화가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일자리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공무원 일자리를 크게 늘렸으나, 그것이 행정서비스의 질적 개선으로 나타났는지는 불투명하다. 설문 결과와 행정 갑질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개혁을 장담했던 정부의 약속조차 갑을관계의 구두계약에 그치지 않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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