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된 한국 축구 ‘레전드’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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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이 된 한국 축구 ‘레전드’ 유상철
  • 한종훈 기자
  • 승인 2021.06.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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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췌장암 4기 진단, 투병 끝 향년 50세 별세
한국 최고 멀티 플레이어 대표팀·프로 무대 맹활약
2002 한일 월드컵 동료 등 축구계 안팎 애도 물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의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의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매일일보 한종훈 기자] 한국 축구 레전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지난 7일 밤, 항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 전 감독은 인천 사령탑에 있던 지난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투병 중에도 벤치를 지키며 인천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아냈다. 그리고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치료에 전념했으나 결국 ‘하늘의 별’이 됐다.

청소년 대표 등을 거친 유 전 감독은 1994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혔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도 차지했다.

울산 외에도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울산에서는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을 기록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4시즌을 뛰며 2003·2004년 J리그 2연패 등에 힘을 보탰다.

유 전감독은 대표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을 터트리며 무승부를 일궈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추가골 등을 쏘아 올리며 4강 신화를 이끌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유 전 감독은 투지의 아이콘으로도 불렸다.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전반전 중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서 코뼈가 부러진 가운데 풀타임을 소화했다. 여기에도 모자라 후반 헤딩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006년 선수 생활 은퇴 후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유 전 감독은 2011년 대전시티즌, 2014년 울산대, 2018년 전남 드래곤즈를 지휘했다. 2019년 5월 인천 지휘봉을 잡은 유 전 감독은 팀의 1부 잔류를 위해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유 전 감독은 병마와 싸우며 끝까지 1부 생존을 위한 경쟁도 놓지 않았다. 결국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경남 FC와 비겨 10위를 확정하며 1부 잔류를 결정지었다. 당시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는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지난해 유 전 감독은 인천의 부진이 이어질 땐 복귀설이 나올 정도로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공식 계정에 유 전 감독의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기 출전 사진과 함께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국내외 클럽들의 애도 메시지도 이어졌고, 국가대표팀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 축구계 후배들도 슬픔을 나눴다. 종목을 넘어 국민타자 이승엽을 비롯해 유승민 탁구협회장도 축구 레전드와 이별을 슬퍼했다.

아울러 유 전 감독의 마지막 팀이 된 인천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임시분향소를 운영하고, 대표팀은 9일 월드컵 2차 예선 스리랑카와 경기에서 선수들은 팔에 검은 밴드를 두르고, 스태프들은 검은 리본을 착용하는 등 고인이 된 ‘레전드’를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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