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위한 슬픈 진혼곡 ‘영혼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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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 위한 슬픈 진혼곡 ‘영혼결혼식’
  • 김윤정 기자
  • 승인 2005.08.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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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 상징하는 인형에 사주 안고 꽃가마 동승
영혼들 합방 의식 마무리…“망자의 첫날밤 깊어 간다”

지난 2월 뇌출혈로 숨진 남자 친구를 잊지 못했던 20대 여성이 한강에 몸을 던져 주위를 안타깝게 한 사건이 있었다.

숨진 박씨의 손에는 스티커 사진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목숨이 끊어지는 고통의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사진 속 주인공은 4년간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던 박씨의 남자친구로 한달 전쯤 뇌출혈로 사망했다. 퉁퉁 부은 명함 크기의 사진 속에는 신씨와 박씨가 얼굴을 비비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박씨는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다만 신씨 어머니 휴대폰에 숨지기 전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죽으면 오빠와 영혼결혼식을 시켜주세요.”  결혼 전에 죽은 자녀에게 짝을 맺어주는 것이 영혼결혼식이다. 최근 들어 이 혼례식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교통사고나 자살 등으로 인한 젊은층의 사망률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영혼결혼식을 원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비록 영혼과의 결혼식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결혼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죽은 자녀들의 부모들과의 상견례를 물론 신방도 차려진다.

하지만 수 백 만원에 달하는 예식비용 때문에 이에 따르는 상술도 기승을 부린다. 지난 12월, 인도네시아를 강타했던 쓰나미 사태로 남동생을 잃었던 가수 고영준 씨. 그 또한 동생과 당시 함께 여행하다 참변을 당했던 약혼녀 이 모양과 영혼결혼식을 치러줬다.

그는 “하늘아래 자식을 둔 부모라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었다면, 비통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저승에서나마 외롭지 않게 짝을 지어주어 영혼 이나마 위로해 주고자 하는 마음은 종교를 떠나 다 같은 마음일 것” 이라며 영혼결혼식을 치르게 됐다.

골무에서 손거울, 참빗에 이르기까지 실제 혼례 버금가는 구색을 맞추고 화려한 것 좋아하는 영가 위해 금가락지를 준비하면 그럴싸한 신방이 차려진다.

신랑, 신부 상징하는 인형에 각각의 사주 안고 꽃가마에 동승하고, 첫날밤 치를 신방으로 안내된다. 이윽고, 영혼들 합방에 따른 의식 마무리되고, 망자 신랑, 신부의 첫날밤은 깊어 간다.

영혼결혼식에서 남녀 영가를 아무렇게나 짝짓는 것은 아니다. 한 쌍의 영가 커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사주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궁합이 맞는 커플을 찾아내야 한다.

사주, 궁합, 택일은 물론이고, 살아생전의 영가의 성격, 사람 됨됨이와 심지어는 서로 사돈될 집안의 가정환경까지 세세한 것 까지 살아있는 사람의 결혼처럼 다 챙긴다.

H 가족협회의 한 관계자는 “영혼결혼식을 하게 되면 사전에 양쪽 남녀 영가의 부모님들이 상견례를 하는 등 양쪽 영가는 물론, 부모님들까지도 상대 영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커플 맺기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영혼결혼식이 끝나면 천도제 등 영가를 달래기 위한 다양한 제도 지낸다.

한편, 영혼결혼식의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 있다. 바로 서울의 홍은동에 위치한 ‘백련사’다. 이곳에서는 한두 달에 한번씩 합동 영혼결혼식이 거행된다.

서울 백련사 설산 주지 스님은 영혼결혼식을 시작해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500여 쌍의 영혼결혼식을 성사시켰다. 서울 백련사 설산 주지 스님은 KAL기 폭파사고와 삼풍 사고 당시 젊은 나이로 떠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영혼결혼식을 시작해 그동안 500쌍을 맺어주기도 했다.

설산 스님은 “원래 우리 나라에서 영혼결혼식이란 문화는 없었다. 옛날에는 총각, 처녀가 죽으면 이승에 맺힌 한을 떨구고 가라고 저자거리에 파묻고 사람들이 밟고 가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무당들이 영혼결혼식을 해주기 시작했고, 이후 몇몇 절에서 영혼 결혼식을 치러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혼결혼식을 치르려면 2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설산 스님이 무료로 영혼결혼식을 해주기 시작하면서 백련사가 ‘영혼결혼식’의 장소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처녀 총각이 죽으면 조상을 뵐 수도 저 세상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고혼이 되어 친 인척에게 나타나 우환을 생기게 한다하여 평소에 사귀었던 사람이나 망자와 비슷한 나이의 영혼들끼리 짝을 지어 혼례를 올려주고 있다.

설산 스님은 “영혼결혼식은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미신의 행위도 아니다”라며 “자식을 잃은 부모님이 가슴에 맺힌 평생의 한을 푸는 애틋하고 눈물겨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애도 의식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 선박을 이용한 ‘바다 장례식장’도 인기를 끌고 있다.

500t급 여객선에 장례관련 시설을 갖춘 이 ‘바다 장례식장’에서는 미혼의 20∼30대 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장례식장에서는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유족이 원하면 ‘처녀·총각 영혼 결혼식’을 치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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