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윗보안법 수사에는 ‘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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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윗보안법 수사에는 ‘법’도 없었다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3.07.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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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피해자 공개·피해사례 기자회견…호주서 '박정근사건' 난민인정 증거 인용

[매일일보]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멘션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박정근씨.

1심 판결에서는 박씨가 직접 작성했던 트윗들(북한에 대한 ‘조롱’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트윗)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별도 멘션 없이 리트윗한 부분들에 대한 유죄와 관련해 아직까지 항소심이 진행중인 상태이다.

▲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고 있는 언어들이나 친구들, 취향 등까지도 다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제가 쓴 트윗들을 범죄일람표에다 집어넣고 공소장에다가 범죄라고 (수백건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모멸감을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10일 오전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리트윗 국가보안법 피해자/피해사례 기자회견’에서 박씨는 “생각보다 많이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어 상당히 피곤하다”며 “트위터 1년 한 것 가지고 2년치 (감옥에서) 썩으라는 소린가”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씨는 “제가 제일 많이 침해를 받았다고 여기는 부분은 2009년부터 트윗을 시작해 10만 건 넘게 했는데, 거기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우리민족끼리 이야기를 한 것들이 0.2프로도 안된다는 점”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그것들을 잡기 위해서 제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고 있는 언어들이나 친구들, 취향 등까지도 다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제가 쓴 트윗들을 범죄일람표에다 집어넣고 공소장에다가 범죄라고 (수백건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모멸감을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이어 “심지어 제가 알고 지낸 사람들, 제 사건에 대해 지지의견을 보내주는 사람들까지 다 감시 대상에 분류해 놓았다”며 “주위사람들의 존엄이 갉아 먹히는 데서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관없는 압수물 항의에 “더 뒤져봐?” 협박

이날 기자회견에 추가 피해자 사례로 동석한 김정도씨는 지난해 10월 11일 오전 9시경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죄, 이적표현물 배포’등의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김정도씨 역시 박씨와 마찬가지로 ‘우리민족끼리’라는 ‘트위터 계정’의 글을 리트윗(확대배포)한 혐의였다. 김씨가 리트윗을 한 이유는 당시 SNS상에서 트위터리안들이 벌이던 박정근씨 구속에 대한 항의 퍼포먼스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김정도씨는 이날 “피해자들은 잊혀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이 기자회견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경찰이 압수수색을 시도한 물품 중에 입시공부 당시 논술공부 자료도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국에 가서 사온 중국어판 ‘공산당 선언’, 전태일 열사 관련 글과 서적, 대학교 엠티 롤링페이퍼 등도 있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당시 경찰 측의 명분은 “공산당 선언이 1996년에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것이었고, 하드디스크 압수 목록 중에 혐의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있어 가족들이 항의하자 “더 뒤져봐?”라며 협박한 경찰도 있었다.

더욱이 경찰은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 ‘혐의’와는 관계없는 반값등록금 투쟁이나 명동철거민 투쟁, 박정근과의 관계, 오세철 교수의 맑스주의 관련 학술논문 입수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취조했다.

특히 김씨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올린 것에 대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사실과 실정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문란케할 목적으로 선전선동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했다고 한다.

▲ 지난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박정근씨를 비롯해, 관련 피해자들이 모여 ‘리트윗 국가보안법 피해자 기자회견’을 10일 오전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가졌다. (왼쪽부터 이승환, 김대리, 신종협, 김정도, 박정근, 김성일 씨)

경찰, 신문조서 답변 내용 조작

군 복무중인 K씨는 올해 4월 24일 오후 12시경 10여명의 국군 500 기무부대원들에 의해 자택을 압수수사 받았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근거는 우리민족끼리 리트윗과 박정근/권용석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트윗 등에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K씨 사례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수사관이 K씨에 대한 조사 과정에 답변 내용을 실제와 전혀 다르게 신문조서에 기재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본인이 그 트윗을 리트윗했을 때 그 트윗을 미성숙하고 인격형성중인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본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K씨는 “평소 인식이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판단하는 건 그 사람의 판단일 것”이라 대답했으나 조서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적었다.

또한 ‘팔로우’의 개념을 묻는 질문에 K씨는 “읽고 싶은 글을 구독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조서에는 “친구로 추가하는 것”이라고 적었고, ‘팔로워’의 개념에 대해서도 “내 글을 구독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지만 조서에는 “날 친구로 추가한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K씨 대신 참석한 김대리(가명)는 “수사 중 당시 박정근 후원회장이었던 김성일의 트윗이나 배우 김여진의 트윗을 리트윗한 일에 대해서도 심문했다”며 “국가보안법과 이 행위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대리는 “심문 중 점심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심문자가 원하는 답변을 해줄 것을 회유했으며 심문장 밖에서까지 회유는 이어졌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끝없이 반복하는 질문을 하는 수법을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했던 질문 또 하고 또 하고…같은 질문 66번

가장 최근에 알려진 사례인 신종협씨는 지난해 박정근 구속 이후 2월부터 5월까지 “#표현의 자유와 박정근을 생각하며 우리민족끼리 일5회 리트윗”이란 트윗을 쓴 후 우리민족끼리 325회 리트윗을 한 혐의로 올해 5월 15일 압수수색을 받았고, 5일 후엔 출국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이후 6월에는 5회 약 40시간에 걸쳐 취조받았다.

신종협씨는 “수사관으로부터 ‘피의자의 리트윗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정확히 66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과정에 ‘북한 선군정치, 연방제 통일 등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과 촛불시위 참석에 대한 질문 등 사상에 대한 질문을 수차례 받았고, 1차 취조에서는 50대 보안과 팀장으로부터 ‘전교조는 빨치산, 광우병대책위는 체제전복단체’라는 훈계를 듣기도 했다.

신씨는 “화폐전시회를 가서 여러 나라의 화폐를 트위터에 올린 것에 대해, 북한 지폐만 집어서 왜 올렸는지 심문하기도 했고, 독재자를 비꼬는 영화 ‘독재자’에서 주인공 사샤 바론 코언이 김정일 항아리를 들고 있는 스틸컷을 트위터에 올린 것에 대해서도 심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차 취조 때 경찰 측이 트위터를 잘 모른다고 하여 피의자가 트위터에 대해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졌다”며 “경찰 측은 스마트폰 트위터 앱이나 PC/맥 트위터 클라이언트에서 우리민족끼리 차단이 불가능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영장 없이 압수수색 시도

이승환씨는 올해 3월 8일 아침 경찰들이 자택으로 찾아와 ‘트위터 리트윗에 대한 혐의’를 거론하며 압수수색을 시도하는 일을 겪었다.

이씨는 찾아온 사람들의 신분증으로 그들이 경찰임을 확인했지만, 영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문틈으로만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수원 중부경찰서로 출두하라는 통보를 구두로만 받았으며, “SNS를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

당시 이씨를 찾아온 경찰은 “대선 때 각종 댓글과 유언비어 유통 등 SNS 유포글이 집중 단속 대상”이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의 의미의 각서 등을 쓰면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경찰은 특히 이씨에게 “SNS를 하지 말라”는 협박도 했다.

이후 경찰조사를 받기로 한 날 이틀 전에 “경찰서로 오지 않아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이씨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일도 못하고 피해를 입었다”며 “다시는 저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험한 무기’ 국가보안법

박정근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일씨는 “박정근씨를 응원하는 것 자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삼고 있다”며 “이 일이 엄청나 보이는 사건은 아니지만 국가보안법이 위험한 무기이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잘 알려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어제 재미있는 제보가 왔는데, 호주에서 난민신청 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분이 자신의 난민 결정문을 보내왔다”며, “결정문의 내용 중에 박정근 사건이 언급된다. 박정근씨 등의 사건과 앰네스티의 사건에 대한 견해 등이 언급되고 한국이 충분히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나라라는 취지의 보충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앞으로의 후원회 활동에 대해 김씨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서 서로 돕고 연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겪고 있는 사건들을 통해 앞으로 국가보안법의 위험성에 대해 적극 알려나가는 한편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에 적극 협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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