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안 별 다른 구광모의 ‘말 무게’…마케팅과 안전불감증 ‘괴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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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안 별 다른 구광모의 ‘말 무게’…마케팅과 안전불감증 ‘괴리감’
  • 정두용 기자
  • 승인 2021.01.2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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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용 산업부 기자
정두용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정두용 기자] “고객 페인포인트(Pain Point) 집중은 ‘고객 가치 실현’의 가장 기본이다. 고객을 더 세밀히 이해하자.”, “안전환경 사고에 대해 모든 경영진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원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는 올해 신년사고, 다른 하나는 지난해 5월 LG화학 대산공장 방문 때 했던 사과다. 대기업 총수가 공식적으로 대외에 나서는 일은 드물다. 기업에 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대대적인 변화를 이뤄야 할 정도의 주요 사안에만 직접 책임과 의지를 표명하곤 한다. 대기업 수장의 말 무게는 그래서 더 무겁게 여겨진다. 

그러나 LG그룹 내에서 구 회장의 말 무게는 달리 적용되는 듯하다. 유리한 지점에선 구 회장의 말을 ‘무겁게’ 불리한 사안엔 ‘가볍게’ 여기는 행보가 이어진다. 놀라울 정도의 온도차다.

신년사에서는 구 회장의 말 무게를 실감한다. 구 회장이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초세분화)’ 마케팅을 주문하자 각 계열사 대표들이 이 전략을 이어받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B2B 기업은 고객사의 불편한 지점(Pain Point) 해결을, B2C 기업은 고객 가치 실현을 강조했다. 또 계열사들은 초세분화 전략에 부합하는 새로운 서비스·상품·시스템을 즉각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구 회장의 사과는 그 무게가 신년사와 사뭇 달랐다. 구 회장은 지난해 5월 가스 누출·화재 사고 연달아 발생한 LG화학 대산공장 현장을 찾아 피해자들에 사과하고 “안전 환경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CEO들에게 직접 안전 환경을 살필 것을 주문했다.

공장 내 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해선 안 된다. 유해 물질이 사용되는 만큼 사고 발생 시 물적 손실은 물론이고 즉각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G화학 인도 LG폴리머스 공장 스타이렌 가스 누출 사고의 경우 인근 주민 최소 15명이 숨지고 약 1000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대산공장 화재론 1명이 사망했다.

국내외에서 사람이 죽었다. 구 회장이 직접 사건 수습에 나서 재발 방지를 주문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구 회장의 사과 이후 8개월이 지난 올해 1월. 다시금 LG화학의 악몽이 떠오르는 사고가 터졌다.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에서 유해 물질이 누출돼 6명이 다쳤고, 그중 2명은 심정지 상태까지 빠졌었다.

LG그룹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할 정도다.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화학사고 613건 중 LG그룹에서만 13건이 발생했다. LG그룹은 이 기간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이 화학 사고를 냈다. 더욱이 LG디스플레이의 이번 사고 발생지점은 6년 전 질소 가스가 누출돼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던 곳과 동일하다.

구 회장의 주문에도 안전환경은 달라지는 게 없다. 선택적 말의 무게가 LG디스플레이의 사고를 야기한 듯하다. 요즘 LG의 행보를 보면 영화 ‘곡성’의 대사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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