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없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환경보건학회 “법원이 과학 다뤄 망친 오류”
상태바
가해자 없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환경보건학회 “법원이 과학 다뤄 망친 오류”
  • 나기호 기자
  • 승인 2021.01.19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보건학회 ‘성명서’… “앞으로 CMIT·MIT 흡입해도 책임 못 물어”
1심 판결 “인정 못해”, 범행의도 행적 따졌어야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1심 무죄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1심 무죄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나기호 기자] ‘가습기살균제 사건’ 핵심 관계자로 1심 재판을 받은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및 제조업체 전직 임직원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 선고에 한 연구단체가 문제의 제품사용과 폐질환 발생의 인과성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1심 판결은 기업의 위법 행위가 아니고 과학과 연구가 갖는 본질적 한계점”이라며 “그 결과, 우리는 CMIT·MIT를 마음껏 흡입하게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고 비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SK케미칼·애경산업 등 관계자 1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제조사인 SK케미칼과 판매처인 애경산업·이마트의 ‘가습기메이트’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해 실제 이 원료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회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는 CMIT·MIT를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하면 인체피해가 우려됨을 사전에 인지했고 안전성 확인의무를 회피했다”며 “그러나, 1심 판결의 결과는 무죄였다. 그 이유는 문제의 제품사용과 폐질환 발생의 인과성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의 대상이 피고인의 잘못이었어야 했는데, CMIT·MIT의 질환발생 입증에 대한 과학의 한계로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동물실험에서 피해의 근거를 찾은 점도 문제 삼았다. 학회는 “동물실험은 인체에 실험할 수 없는 상황에 대안적으로 활용된다”며 “실험동물의 증거나 기전적 증거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질의 유해성 여부는 인체 영향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2018~2019년 수행된 추가 수행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진행됐음을 적시했다. 이는 CMIT·MIT의 독성을 동물실험에서 살펴보기 위한 연구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CMIT·MIT에 흡입 노출된 쥐의 상부 호흡기에서 염증과 변성이 발견됐다. CMIT·MIT가 물에 잘 녹고 자극성이 큰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담당 연구진은 비록 실험동물의 하부 호흡기에 폐섬유화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호흡기의 해부학적 구조와 호흡방식이 사람과 다름을 고려하면 폐섬유화 등 폐손상 유발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이 연구 기획이 의도적이었고 실험방법은 가혹했으며, 해석은 편향됐다고 봤다. 또한, CMIT·MIT로 인한 폐섬유화의 ‘인과관계’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학회는 “CMIT·MIT의 건강영향에 대한 규명은 과학이 할 일이다. 과학이 해야 할 일과 법이 해야할 일의 구분이 없어지면 갈릴레오 시대의 판결 같은 오류가 생산될 수 있다”면서 “‘인과관계’가 엄격히 입증돼야 함은 인정하지만, 그 대상이 물질과 건강피해의 입증이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의도와 행적을 더 엄격히 따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