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 시대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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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우리 시대의 평화
  • 송병형 기자
  • 승인 2021.01.13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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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친애하는 여러분, 영국 수상으로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에 가서 편안히 잠드십시오.”

1938년 9월 30일 독일 뮌헨에서 돌아온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히틀러와 체결한 뮌헨협정에 대해 설명한 뒤 이같이 말했다. 이른바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연설이다.

체임벌린이 뮌헨으로 떠나기 전 영국 내 분위기는 반전론이 대세였다. 히틀러의 야욕이 인류 역사상 최대 참사를 부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체코의 땅덩이를 독일에게 떼어주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독일 팽창 우려에는 ‘그럼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며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1차 대전 참혹한 참호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시절이었다. 체임벌린조차 1차 대전에서 많은 지인들을 잃었다. 영국인들은 또 다시 남의 땅에서 피를 흘리기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힘든 시기였다. 체임벌린은 재무장관 시절 대공황에 슬기롭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쟁으로 영국 경제를 다시 파탄으로 몰아갈 수는 없었다.

또 히틀러가 스탈린보다는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대공황 와중 중공업을 키우면서 수백만 명을 숙청했고, 그의 가혹한 통치로 수천만 명이 아사했다. 히틀러 체제를 무너뜨리면 유럽에 공산주의 확산을 초래할 테니 차라리 히틀러의 독일을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방벽으로 삼자는 판단이다.

그래선지 체임벌린은 연설에서 자신을 60년 전 벤저민 디즈레일리 수상에 빗대며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디즈레일리는 영국 역사상 첫 번째로 독일에서 평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1878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외교적 수단을 부려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하며 영국의 이익을 지켰다. 체임벌린의 자화자찬은 이번엔 자신이 뮌헨에서 전쟁이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평화를 가져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시간을 번 히틀러는 신무기를 찍어내며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해 불과 1년 뒤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체임벌린은 ‘유화정책으로 히틀러의 오판을 불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그의 해법은 ‘실패한 유화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세계사에 남게 됐고, 그는 후대 영국인들에게 ‘실패한 총리’의 대명사가 됐다.

2018년 9월 20일 평양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당일 대국민보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거듭 확약했다”며 한반도에서 핵이 사라지고 영구적 평화가 도래할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2021년 새해 벽두 김정은은 8차 당대회를 통해 보다 강력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공언했고, 북한 노동당은 강력한 국방력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문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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