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가계대출 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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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가계대출 규제인가
  • 김정우 기자
  • 승인 2021.01.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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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정우 기자] 연말 막혔던 신용대출 문이 다시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수요가 몰렸다. 은행권에 가계대출 총량 조절 압박을 가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무색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7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4조101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33조6482억원에서 불과 4거래일 만에 4534억원이 불어난 것이다. 특히 마이너스 통장을 통한 신규 신용대출이 지난해 12월 31일 1048건에서 7일 1960건으로 약 2배 늘었다.

특히 지난 4~5일 풀린 신용대출 금액은 3500억여원에 육박한다. 가계대출 규제에 나선 금융당국이 은행에 요구한 월 신용대출 신규 취급액인 2조원의 약 17%가 이틀 만에 소진된 셈이다.

사실상 중단됐던 은행 신용대출이 속속 재개되면서 그 동안 억눌렸던 대출 수요가 몰린 것이다. 지난해 11월 당국은 급격히 불어나는 가계대출 자금이 부동산 또는 주식시장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고자 고액 신용대출에 대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가했고 우대금리·한도 축소부터 주요 비대면 상품 취급 중단 등 극단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반면 부동산·주식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당연히도 자금을 유통하려는 수요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등에 따른 경기침체로 생활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도 꾸준하다.

당국은 대출 증가세가 고개를 들자 재차 규제를 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이런 단순 억제책의 실효성은 의문이다. 규제를 앞두고 가능한 한 대출을 일으키려는 ‘가수요’ 폭증 문제, ‘대출절벽’에 몰린 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풍선효과 등에 대한 이렇다 할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서민 금융지원 등 경제적 역할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은행들이 부동산·주식시장 과열 현상의 책임까지 져야하는 모양새도 앞뒤가 맞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금리가 내려가고 유동성은 증가하니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렸고, 세금 부담을 높이는 부동산 정책이 자금 경화를 일으켜 이상 가격상승을 초래했는데 그 충격은 은행이 흡수하는 꼴이다.

특히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바닥까지 떨어진 은행들이 당국의 눈치까지 보며 ‘울며 겨자먹기’식 대책을 내놓는 상황은 건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적은 고신용자 고액대출부터 이뤄진 것을 봐도 최근의 대출 규제가 근원적 해결보다 형식적인 ‘땜질’에 그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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