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개수수료 개편·중개사 없는 거래 추진에 업계 반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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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개수수료 개편·중개사 없는 거래 추진에 업계 반발 이어져
  • 이재빈 기자
  • 승인 2020.09.27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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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내년 예산안에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공인중개사협회 반발…“탁상행정에 소비자만 피해”
거래 반토막, 전월세 급감에…공인중개소 폐업 늘어
“동정의 여지 없다” vs “모든 중개사 비양심은 아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24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시스템 구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이재빈 기자] 공인중개사 없는 부동산 거래와 중개수수료 개편을 추진하려던 정부가 거센 반발에 마주쳤다. 공인중개업계가 거래급감으로 수입이 줄고 있는 상황 속에 정부가 나서 숨통을 옥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일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인 지능형 정부 구축 사업에 8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세부 과제 중에는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등 블록체인 활용 실증 사업이 포함됐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을 통해 집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비대면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연구 용역도 내년에 시행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비대면 방식을 공인중개업계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미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177억원을 투입해 거래계약서를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체결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지난해 이용 건수가 6만7148건으로 전체 거래 361만7116건의 1.8%에 불과해 전시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1일 기재부가 발표한 중개인없는 부동산 거래는 전자계약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 시스템 이용률을 끌어올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공인중개업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중개인없는 부동산 거래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개시했다.

협회는 보도자료에서 “지역사정에 밝은 개업 공인중개사의 축적된 노하우와 현장 실사 능력은 집을 선택할 때 필수적”이라며 “중개인 없는 거래 운운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면서 소비자의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또 “45만명의 공인중개사 합격자가 배출됐고 이중 10만6000명이 개업 공인중개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중개인 없는 거래는 개업 공인중개사 말살정책이다. 100만 중개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공인중개업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부동산 거래 급감으로 인한 수입 감소에 있다. 주택 거래가 위축되면서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상황인데 정부까지 나서서 중개업계의 숨통을 조인다는 반발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에서는 1302개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문을 열었고 1097곳이 폐업하거나 휴업에 들어갔다. 개업은 전월(1468건) 대비 11.3% 감소한 반면 폐·휴업은 1087건에서 1097건으로 증가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서울의 아파트 거래 건수는 1만651건에서 4903건으로 반토막났다. 전월세 거래도 1만5443건에서 9858건으로 5000건 이상 감소했다. 거래마다 수수료를 받아 수입을 얻는 공인중개업계 입장에서는 일감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는 블록체인 시범사업 공모형 과제의 예시일 뿐, 추진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일부 표현에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고 시인하면서 공인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를 실제 도입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논의는 후퇴하는 모양새지만 중개수수료는 여전히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지난달 25일 “부동산 중개수수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수수료 조정에 대해) 고민을 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 부동산 중개보수 요율표에 따르면 주택 매매거래는 금액에 따라 0.4~0.9%, 임대차계약은 0.3~0.8%가 수수료로 책정된다. 최고요율인 0.9%가 적용되는 9억원 이상 주택을 거래하면 810만원 이상의 수수료가 지출될 수도 있는 셈이다.

최근 주택 매매거래를 체결했다는 A씨는 “중개수수료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다가 계약서 쓰는 날 최대요율을 줘야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공인중개사도 밥벌이는 해야겠지만 사전에 수수료율을 명확히 밝히지 않다가 마지막에 최대요율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다수 들었는데 이번에 당해보니 중개수수료나 중개사 없는 거래 등의 문제에 대해 딱히 동정이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B씨는 “개업한지 얼마 안 됐거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영업하는 일부 뜨내기들이 무작정 최대요율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면서도 “모든 공인중개사들이 양심없이 영업하지는 않는다. 한 지역에서 오래 영업한 공인중개소는 최대요율을 적용하지 않고 적절한 가격에서 합의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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