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공재개발은 다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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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공재개발은 다르길 바라며
  • 이재빈 기자
  • 승인 2020.09.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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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빈 기자] 20세기는 그야말로 ‘개발독재’의 시대였다. 영세세입자와 원주민의 생존권에 대한 논의는 부재했던 시대다. 개발에 대한 욕망은 용역깡패와 행정력을 동원해 도시의 한 언저리에 터전을 잡고 있던 이들을 내몰았다.

새천년에 들어서서도 지난 세기의 잔재는 여전했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구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던 용산참사가 이를 방증한다.

서울 한복판에 마천루를 세우겠다는 청사진은 유려했다. 마천루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정부와 건설사는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 속에는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이들에 대한 고려는 부재했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군부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무력 진압을 택했다. 슬프게도 정부의 선택은 참사로 이어졌다.

용산참사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다행히 실체가 있는 폭력, 즉 주먹으로 원주민을 내쫓는 일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다만 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약자들의 곁을 지켜야할 법은 여전히 개발이익의 편에 서있다.

세입자들은 여전히 얼마 안 되는 돈에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자리를 잡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업에 몰두했던 소상공인들의 노력은 그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매겨진다. 자신의 건물이 있는 원주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개발 과정에서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의 감정평가액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작다는 이유로 헐값에 현금청산을 당하기도 한다. 고급화에 눈이 멀어 터무니없이 올라간 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주민들의 삶이 불안해진 책임은 자본과 국가에도 있다. 자본논리가 아직도 생존권보다는 개발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에게 영세한 원주민과 세입자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주거환경을 개선시킬 책임이 있는 정부도 예산이 부족하다는 자본논리를 앞세워 뒷짐만 지고 있다. 정부는 그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뒤에 숨어 방관하고 때때로 일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공공재개발이 등장했다. 지분공유제는 영세한 원주민의 내몰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세입자에 대한 개발주체의 태도도 한결 상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정부가 세간의 기대만큼 민초들을 지켜줄 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공공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서 마냥 잘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는 이르다. 실제로 정부의 택지수용 방식은 여전히 ‘약탈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공은 정부에 넘어갔다. 공공재개발도 민간재개발과 마찬가지로 낡은 개발논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주민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공공재개발이 개발은 자본의 악행이라는 시선을 불식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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