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래된 연인, 결혼이냐 결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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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래된 연인, 결혼이냐 결별이냐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3.05.15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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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겸 시인이자 독설가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 중에 “여자는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 있다.

남녀 간 언어 차이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본 남자라면 공감할 만한 이 ‘격언’이 요즘 남북관계를 볼 때면 종종 뇌리에 떠오른다.

북한의 남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스스로의 캐릭터를 ‘연인에게 떼쓰는 20대 철부지 아가씨’로 설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상대와의 정상적인 대화는 포기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강짜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북한이 남북화해협력 시대의 옥동자였던 ‘개성공단’을 빈사상태로 이끄는 선택을 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남측 시민단체나 민영언론에서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봉건적이고 구태스런 독재적 행태에 대해 비틀고 꼬집는 글과 퍼포먼스를 내보내는 게 자기네 ‘최고 존엄’을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최고 존엄 훼손’에 분통을 터뜨리는 북한이 정작 자기네 정부기관과 관영언론을 통해 남한 대통령을 ‘치맛바람’, ‘청와대 안주인’이라 비하하고, 정부는 ‘괴뢰(꼭두각시)’, 여당은 ‘역적 패당’이라고 막말을 쏘아대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우스우면서도 슬픈 마음이 든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오래된 연인 혹은 갈등 중인 사실혼 부부에 비견할 수 있다.

1971년 첫 남북채널 개설 이후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던 양측은 2000년 6·15선언을 통해 약혼을, 개성공단이라는 옥동자를 낳으면서 사실혼 관계를 이어왔다.

앞으로 남북이 만들어가야 할 한반도평화협정 체결과 남북연합 단계 성사는 ‘축복받는 결혼식’에 해당될 것이다.

▲ 김경탁 사회부장

북한의 자기 캐릭터 설정(?)이 부적절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연애 초기나 신혼 때라면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있었던 여자의 억지와 투정이 감정이 식어가고 관계가 식상하게 느껴질 때라면 결별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의 관계를 묶어주던 아이가 갈등 과정의 돌봄 소홀로 인해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

오래된 연인에게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 결혼 혹은 결별이다.

지금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급한 것은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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