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샤워실의 바보’는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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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샤워실의 바보’는 바로 당신이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7.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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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 이론이 있다. 시카고학파의 대부이자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샤워실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 이론이다.

‘샤워실 바보’ 이론은 샤워하기 위해 온수를 틀었을 때 너무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 황급히 냉수로 바꾸고 물이 너무 차가워지면 다시 온수를 트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다 결국 샤워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물 온도를 경기 등락으로 물 온도를 바꾸는 행위를 정부 정책으로 빗댔다. 경기가 급변하는 시기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면 경기 변동을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는 경고다. 이 이론은 과거 신자유주의의 주된 논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도 종종 인용된다. 샤워하는 이가 물 온도에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냉수나 온수로 바꾸지 않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는 해석이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해 보자.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대통령은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도덕적 결함이 있어서나 무주택 서민을 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국난의 시기에 텅 빈 국고를 안고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2001년 이후 부동산 시장은 활화산과 같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이 열기를 식히기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 투기 과열 지구 지정, 3주택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투기지역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등 규제책을 시행했다.

규제 강화 정책 기조는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급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금자리주택 수도권 100만 가구, 지방 50만 가구를 공급했다. 그런데 그해 9월 국제금융 위기로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정책도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집권 이후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와 공급 억제 정책을 시행했다가 임기 말쯤 부동산이라는 화산이 폭발, 경제를 몰락시킬 기미가 보이자 2016년 8·25 가계부채 대책을 시작으로 잇달아 강력한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도 강력한 규제 정책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특정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규제 강화 정책이든 규제 완화 정책이든 그 효과는 매우 더디게 나타난다. 통상 다음 정권에서야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정권마다 최선의 대책을 내놨다고 할 순 없지만, 경제 상황을 분석해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했을 뿐이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뛰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안정된다는 말이 완벽하게 틀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정부는 그저 최고조에 달한 자산 거품이 붕괴해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질 것을 우려해 규제 강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나 지난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또한, 문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부동산 시장 침체로 금융시장이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규제를 완화했을 것도 분명하다. 이런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정부 정책, 즉 물 온도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건 샤워실 바보는 정부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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