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나라를 가장 쉽게 망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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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나라를 가장 쉽게 망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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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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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규 공학박사(기술경영학)
김휘규 공학박사(기술경영학)

여행을 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적은 글을 기행문(紀行文) 혹은 여행기(旅行記)라고 한다. 이런 글은 타인에게 간접경험을 선사한 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어낸다. 특히 물리적, 시간적으로 괴리가 크고 생소한 지역에 대한 여행기일수록 재미가 커지는데, 이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 주는 신비로움의 매력을 함께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도 많은 기행문들을 남겼다. 대부분이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을 다녀오면서 남긴 기록들인데, 당시의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조선후기 기행문으로는 해유록, 북학의, 열하일기 등을 들 수 있다.

해유록(海游錄)은 1719년(숙종45년) 조선통신사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申維翰)이 남긴 작품이다. 18세기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우리에게 해유록의 내용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해유록은 당시 일본을 상업, 농업 및 각종 도시기반 인프라 등이 조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경제대국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학의(北學議)는 박제가(朴齊家)가 1778년(정조2년) 사은사(謝恩使) 채제공(蔡濟恭)의 수행원으로 연주, 계주 등의 청나라 지방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따라할 만한 그들의 풍습과 생활상을 기록한 글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요즘으로 본다면 일종의 벤치마킹(Benchmarking) 보고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학의가 보여주는 청나라의 선진적인 면모 역시 해유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청나라와 비교되는 18세기 조선의 후진적인 모습이다. 열하일기 1780년(정조4년)는 연암 박지원이 사절단의 정사인 진하사(進賀使) 박명원(朴明源)의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돌아보면서 겪은 본인의 경험과 느낌을 매우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열하일기에도 북학의와 마찬가지로 당시 조선의 후진적인 상태를 한탄하고 청나라를 부러워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당시 이런 기행문들은 선비들 사이에 인기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로는 멸시와 배척의 대상인 청나라와 일본을 너무나도 대단한 선진국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놓고 배우자고 했으니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이 실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청나라나 일본을 보기 좋게 포장했다고 치부할 수 도 있겠지만, 실제 원문을 읽어보면 오히려 그런 뉘앙스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당시의 시대상과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오히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교육과정에서 18세기 조선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이미지는 사극에서 나오는 그것과 다르지 않은데, 실상 기행문을 통해 18세기 청나라와 일본에 비춰진 조선의 모습은 너무 후진적이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층이 자주 쓰는 비속어 중에 ‘국뽕’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라 국(國)에 중독성이 있는 것에 빠지다는 의미로 마약인 ‘히로뽕’의 ‘뽕’이 합쳐진 단어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우리의 각종 문화, 사상, 기타 여려 행태 등이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넘친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국뽕은 시각을 편협하게 이끌고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최고라는 아둔함을 불러온다. 그만큼 국뽕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이끌어 낼 여지가 많다. 그래서 ‘국뽕’에 빠지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보면서 걱정되는 점 중의 하나가 이런 부분이다. 견강부회(牽強附會)하는 위정자 무리들은 항상 이러한 국뽕적 뉘앙스를 많이 이용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잘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괜찮아, 우리나라는 문제없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국뽕을 강조하는 자들은 사실 나라를 가장 손쉽게 망치는 매국노일 수도 있기에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한 조선시대 후기 기행문들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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