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발목 잡힌 국책은행 개혁…생산성도 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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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발목 잡힌 국책은행 개혁…생산성도 뚝뚝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0.02.20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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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참여 요구 속 성과주의는 거부...유휴인력은 폭발 직전
노조 눈치에 의사결정만 지연...혁신금융시대 경쟁력도 저해  
국책은행들이 노조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출근저지 시위를 벌이는 노조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책은행들이 노조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출근저지 시위를 벌이는 노조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국책은행 노조의 입김이 세지며 갖가지 사안을 두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노조가 도입을 주장하는 '노조추천이사제'와 정부가 추진 중인 '직무급제' 도입은 수년째 갈등만 양산하고 있고, 명예퇴직이 사실상 중단된 국책은행은 노조 눈치 속에 소위 '잉여인력'이 폭발 직전이다. 일각에선 '성과주의'는 거부하는 노조가 밥그릇 지키기에만 매달려 국책은행의 개혁도 번번이 발목 잡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책은행 노조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친노동’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등에 업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공식화하며 노조의 경영개입의 길을 터 준 바 있다.
 
◆노조의 경영개입, 우려의 시선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인물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제도다. 근로자 대표가 직접 사외이사가 되는 노동이사제보다는 노조의 개입 강도가 약하지만, 노조를 대표하는 인물이 경영진에 자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

노조는 대외적으로는 노조추천이사제를 통해 조직의 방만 경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속내는 금융권 노조의 사측에 대한 요구사항을 더욱 쉽게 관철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려도 많다. 가뜩이나 노조와 눈치를 보는 입장이 되어버린 국책은행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사회에서 경영상황과 상관없는 노조의 요구사항으로 발목 잡히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기로 했던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인력 구조조정 등은 사실상 중지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지난해 말 수출입은행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사외이사 후보에 포함됐으나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에 의해 무산된 사례가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신임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인 끝에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얻어내면서 금융권 최초의 노조추천 사외이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산은 노조도 지난달 30일 열린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신임 노조 집행부가 취임하며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기로 방향을 설정했다. 특히 산은의 경우 사외이사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노조추천이사제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는 변했는데 밥그릇에만 시선

유휴인력이 쌓이며 인사적체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국책은행의 고민거리다.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노조의 보호 속에 명예퇴직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산업은행의 임금피크 적용 직원 수는 274명으로 전체 직원(3175명)의 8.6%였다.

같은 시기 수출입은행의 임금피크 직원은 38명으로 전체 직원(1131명) 중 3.4%, 가장 직원이 많은 기업은행의 임금피크 직원은 무려 510명으로 전 직원(1만3226명)의 3.4%를 차지했다.

문제는 국책은행의 임금피크 적용 대상자가 점차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용돼 온 결과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은 2010년, 산업은행은 2014년, 기업은행은 2015년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자가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임금피크 진입 대신 퇴직을 선택했을 때 손에 쥐게 될 퇴직금이 적어서다. 노조는 명예퇴직을 활성화하려면 퇴직금을 시중은행 수준으로 맞춰달라고 요구 중이다. 하지만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 문제가 뒤따른다. '신의직장'으로 불리는 국책은행의 명퇴금을 세금을 투입해 억대 수준으로 올릴 경우 국민들의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한편 국책은행 노조들은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직무급제 도입은 결사 저지 중이다. 실제 기업은행 노조는 윤종원 행장은 출근저지 시위를 통해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금지'에 대한 약속까지 받아냈다. 노조의 밥그릇 지키기에 국책은행의 생산성만 떨어질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핀테크의 공습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 국책은행들은 노조 눈치에 급급해 시중은행에 비해 경영 판단이 더 뎌지고 개혁도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직무급제 반대 등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도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고 소비자가 아닌 조합원들만의 이익만 대변하면 그것이 결국 ‘관치 금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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