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95년생 김 씨의 ‘지옥고’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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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95년생 김 씨의 ‘지옥고’ 표류기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1.05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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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2년만에 탈출했지만 옥탑방살이 시작
역세권 청년주택도 높은 경쟁률에 '그림의 떡'

[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이곳에서 평생 나갈 수 없을 줄 알았죠.”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철수(가명, 26세)씨가 2년여의 고시원 생활을 마치고 이사를 준비하며 내뱉은 짧은 소회다. 김 씨가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고시원 생활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18년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에 복학하면서다.

충남이 본가였던 김 씨는 기숙사에서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 35만원,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난 3일 찾은 그의 2평 남짓한 방 안엔 스킨 등 화장품 몇 가지, 세면용품, 헤어드라이어, 수건 5장과 겨울 옷 5벌이 살림 전부였다. 이 이상은 둘 곳이 없어 집에서 가져올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건물 총면적은 100평도 되지 않아 보였지만,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출입문이 여백 없이 붙어 있어 거주자는 30명에 달했다. 이들은 냉장고 한 대, 전자레인지 한 대, 샤워기 한 개, 10㎏짜리 세탁기를 공용으로 이용했다. 그는 두 개의 화장실 중 한쪽에 설치된 샤워기는 단 한 번도 시원하게 물이 나온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 씨가 자신의 고시원 방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사진=성동규 기자 
김 씨가 자신의 고시원 방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사진=성동규 기자 

◇ 돈 아끼려 선택한 고시원, “다시는 못 살겠다”

김 씨는 전역 후 방학은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부모님은 본가 근처 국립대 진학을 권유했으나 그는 꿈을 위해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택했다. 등록금 외에는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월세에 고시원 관리비 5만원, 고정 지출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먹고 마시는 걸 최대한 아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의외로 빨래였다. 공용 세탁기는 항상 돌아가고 있었고 어쩌다 운이 좋아 세탁을 해도 두 개의 공용 건조대에는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말 따위가 가끔 사라지는 건 덤이었다. 빨래방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했다. 옷이 몇 개 없어 세탁을 자주 하다 보니 빨래방에서 쓰는 돈만 한 달에 10만원에 달했다. 돈을 아끼려고 고시원에 들어왔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소음도 문제였다. 방과 방을 나누는 벽은 얇은 합판으로 방음이 될 리 없었다. 옆방에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는 물론 수화기 너머 상대방 목소리마저 들렸다. 고시원에는 야간에 근무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는 건 사치였다.

진동 알람에 깨지 못해 수업에 늦을 때도 아르바이트에 늦을 때도 많았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삶을 살아간다기보다는 하루하루 겨우 버텼던 것 같다. 고시원에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게 김 씨의 말이다.

김 씨가 이사를 앞두고 있는 옥탑방 내부. 사진=성동규 기자
김 씨가 이사를 앞두고 있는 옥탑방 내부. 사진=성동규 기자

◇ 고시원에서 옥탑방으로… 벗어나지 못한 ‘지옥고’

“2018년 종로 고시원 참사를 TV 뉴스에서 봤는데 너무 무서웠다. 스프링클러도 없이 불 꺼진 좁은 복도, 하나뿐인 탈출구, 작동하지 않는 화재 감지기 등이 당시 내가 사는 곳과 다를 게 하나도 없더라. 방에 누워 있으면 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김 씨는 그나마 환경이 좀 더 나은 고시원을 여러 차례 찾아다녔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방법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만 잠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마저도 줄여야 했다.

올해 새 학기가 되면 지긋지긋한 고시원 살이를 마치고 옥탑방을 얻어 나갈 수 있게 됐다. 8평 정도 되는 조그만 방이지만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가 45만원이었다. 보증금이 낮으니 월세가 비쌌다. 그래도 드디어 내 집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김 씨가 정부 지원 제도 등을 찾아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임대주택은 틈이 날 때마다 계약을 받아주는 집주인을 찾아다녔으나 끝내 방을 구하지 못했다. 행복주택 등은 학교에서 통학하기 너무 멀어 포기해야 했다. 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을 알아봤지만 경쟁률이 너무 높아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김 씨의 서울 ‘지옥고’ 생활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가 졸업 후 바로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 생활이 끝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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