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크리스마스 ‘정쟁 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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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크리스마스 ‘정쟁 필리버스터’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12.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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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기나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는 성탄절을 맞이한 25일에도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진행하며 입씨름을 이어갔다. 필리버스터는 국회 내 다수파인 여당이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 진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다. 3년 10개월 만에 이를 볼 수 있게 됐지만 지겨운 정쟁만 반복해 여론과 국민의 관심을 얻기에는 실패한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필리버스터가 여야의 ‘밥그릇 필리버스터’가 되어 정쟁성 발언으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미 1년 넘게 끌어온 선거법 개정안은 ‘꼼수 정치’ ‘누더기 선거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밥그릇 쟁탈전’이라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시청하려는 시민들로 ‘마국텔’(마이 국회 텔레비전)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도 가득 찼던 2016년과는 사뭇 달랐다. 이번에는 지난 16일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의 국회 내 시위로 한바탕 난리가 난 후 일반인의 경내 진입이 까다로워지며 시민들의 본회의 방청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참 외로운 싸움이다. 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해봐야 듣는 사람도 없고”라며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필리버스터에서 가장 오래 토론을 한 의원은 5시간 50분을 기록한 한국당 박대출 의원이다. 2016년 필리버스터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12시간 31분에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 기록이다. 이미 선거법 표결이 기정사실화된 탓인지 결연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였으나 무관한 자유발언도 이어져 취지가 무색해졌다. 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이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 집행 정지를 해 달라. 구속 1000일이 된 여자대통령에게 뭐 그렇게 증오로 복수해야겠나”라고 했고,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탄핵을 유일하게 인정 못하는 집단이 한국당”이라고 응수했다. 국회에는 밤새 불이 켜졌지만 본회의장에서는 종일 빈자리가 가득해 휑한 ‘나 홀로 연설’로 전락했다. 그나마 자리를 지킨 몇몇 의원도 책이나 휴대전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밤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서 ‘쪽잠’을 청하는 의원들도 목격됐다. 다른 당 의원이 발언하면 우르르 본회의장을 나가버리고, 반대 의견에 대한 존중의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쪼개기 임시국회’ 전략을 현실화한다면 이러한 코미디 같은 필리버스터도 반복될 전망이다. 이미 몇 달간 끌어온 주제로 필리버스터를 하다 보니 국민의 피로감만 높아지고 있다. 당초 취지를 잊은 채 소모적 공방으로만 일관하는 필리버스터는 어느 국민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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