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니르바나 접근법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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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니르바나 접근법의 오류
  • 임유정 기자
  • 승인 2019.12.1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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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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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임유정 기자] 1920년대 미국에서는 금주법 제정으로 술의 제조와 유통이 금지됐다. 헌법개정으로 금주법이 폐지된 1933년까지 미국에서 공식적인 술자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청교도 정신을 표방해 음주 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절주운동을 전개한 수많은 사람의 선한 의도와 달리 알코올 중독 사상자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시장에서 마피아 조직이 활개를 치면서 주류 밀거래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무허가 술집 개업을 비롯해 강력 범죄의 증가 등의 부작용 사례를 낳았다.

‘규제’는 불안정한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일컫는다. 반면 규제를 통해 거꾸로 상황을 악화 시키는 현상은 ‘규제의 역설’이라 칭한다. 순기능 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을 때를 가리킨다. 미국의 금주법 역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현재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미국의 금주법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발맞춰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다. 일례로 국내 대형마트 업계는 온라인과의 경쟁으로 갈수록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각종 규제가 더해지면서 신규 출점 등 국내서의 사업 확장은 멈춰 서있다.

특히 지난 2012년 1월 영업시간 제한 및 한 달 2회 의무휴업 규제가 적용된 이후 관련 업계의 시름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설상가상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41건에 달한다. 19대 국회에서도 60여건이 발의된 것을 포함하면 19대와 20대 국회에서만 100건이 넘는 숫자다.

미국의 경제학자 ‘덤세츠’ 교수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규제가 끊이지 않고 생성되는 것을 가리켜 ‘니르바나적 정책 접근의 오류’라고 명명했다. 니르바나는 불교의 열반을 뜻하는데, 유토피아같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구현할 수도 없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과도한 시장개입을 합리화 하는 것을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시장의 ‘불완전’과 ‘비효율’은 별개의 문제로 해석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이끄는 국내 기업들을 위해 규제를 통해 옴짝 달싹 못하게 하기 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발전과 혁신으로 이끌어주는 것이야 말로 국가의 몫이다. 한 국가의 번영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 실천이 응축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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