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서 가족도 버린 ‘패밀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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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서 가족도 버린 ‘패밀리가 떴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4.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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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잔고에 눈 돌아가 병든 오빠 돈 빼돌리고, ‘치매’ 억만장자 친척 호적에 입적해 수십억 ‘꿀꺽’

20대 백수 청년부터 50대 주부까지 ‘너도 나도’ 철판 범행
‘돈 많고, 아픈 홀몸 노인’은 ‘황금알 낳는 거위’ 보호책 부재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경기가 어려워지자 친족을 상대로 금품 사기∙절도 행각을 벌이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각종 사건∙사고 기사의 소재가 되고 있다. 납치 자작극을 벌여 현금을 요구하는가 하면 병들어 몸 져 누워 있는 가족의 ‘완치’보다 ‘통장 잔고’에 눈 독 들이는 파렴치한 ‘패밀리’들도 있다. 진실을 밝혀내기도 민망하고, 미안한 그 사건들을 <매일일보>이 취재했다.

경기도 안양의 20대 청년 백수 A씨(22∙남)는 최근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어머니의 패물을 훔쳐 내다 팔았다가 들키는 바람에 혼쭐이 났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도 다녀왔지만 대졸이상의 고학력자들도 실업자 신세인 경우가 허다한데 ‘고졸’ 학력으로는 변변한 일자리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변이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 곳도 없고, 군대도 다녀왔는데 집에서 용돈을 타서 쓰는 것도 미안했다’는 A씨의 그릇된 생각이 부모의 패물에 손을 대게 한 것. 하지만 여타의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이 정도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오빠, 내가 병간호 해줄게”

지난 13일 암 투병중인 오빠의 재산을 노리고 간병을 자청, 오빠의 통장에서 돈을 몰래 빼내 사용한 비정한 여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이날 혈액암(백혈병)을 앓고 있는 친오빠(60)의 간병을 자청한 뒤 돈을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한 유모(58∙여)씨를 절도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생 유씨는 지난달 20일 오전 10시경 서울 동작구 ㅈ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오빠의 병실 사물함에서 통장과 신분증, 인감 등을 훔쳐 이를 이용해 모두 10여차례에 걸쳐 2천여만원을 자신의 아들계좌로 이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유씨는 최근 오빠가 백혈병 말기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3년여 만에 연락을 취해 자신이 간병을 하겠다고 나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유씨는 오빠에게 “병원비를 대납해주겠다”며 통장과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2천여만원을 빼돌렸으며, 이중 1천5백만원은 곗돈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유씨는 오빠를 돌봐주려 한 게 아니라 미리 범행을 염두에 두고 오빠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무너진 가족애를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 사건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빠의 신고로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게 됐으며, 오빠 유모씨는 동생의 범행이 괘씸해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모님은 우리 남편 ‘새엄마’예요”

치매를 앓는 고모의 재산을 노리고 양자로 입적한 뒤 13억의 재산을 빼돌린 ‘파렴치 부부’도 경찰에 적발됐다.

인천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10일 고모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산을 가로챈 혐의(준사기) 등으로 교육공무원 윤모(33∙여)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윤씨의 남편 정모(37∙남)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 부부는 몇 년 째 치매를 앓고 있는 고모 정모(79)씨의 아들이 자신의 사업부도 이후 정씨와의 왕래를 끊자 이 틈을 타 지난해 4월 30일 서울의 한 구청에서 ‘고모 정씨가 남편 정씨를 양자로 입적시키는 것에 동의했다’고 허위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 정씨가 고모의 양자로 입적된 이후 이들 부부는 같은 해 11월초부터 두 달간 은행, 보험사 등에 맡긴 예금 중 13여억원을 인출, 아파트 구입∙사업자금 등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 부부는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중증치매 판정을 받은 고모 정씨가 100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이 같은 범행을 시도했으며, 재산을 가로챈 뒤 피해자를 경기도의 한 노인 요양원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들은 피해자의 아들이 친자가 아닌 입양해 키운 아이라며 ‘친자관계부 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등 피해자의 사후 유산까지 노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윤씨 부부의 이 같은 파렴치한 행각은 피해자 장씨의 소재를 찾는 아들의 신고로 막을 내리게 됐다. 인천지방경찰청 수사과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계좌압수수색 등을 통해 용의자를 붙잡았다.

이와 관련 한 경찰관계자는 “양자 입적절차가 매우 허술해 피해자 정씨와 같이 재산이 많은  단신 노인들은 아무도 모르게 범죄자들에게 재산을 빼앗길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여보 나 납치당했어, 돈 좀 보내줘”

중국 마카오에서 도박으로 수억 원을 탕진하고 수천만 원의 빚까지 진 50대 남성이 빚을 갚기 위해 ‘피랍’소동을 벌였지만 결국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자신이 쇠고랑을 찬 경우도 있었다.

지난 3월 17일부터 30일까지 중국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서 속칭 ‘바카라’ 도박을 벌인 임모(54)씨는 180여차례에 걸쳐 2억여원을 날리고, 판돈이 떨어지게 되자 여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업자 이모(35)씨 등에게 여권을 맡기고 7천여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7천만원까지 잃게 된 임씨는 여권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부인 몰래 이 빚을 해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임씨가 생각해 낸 게 바로 ‘납치 소동’이었다.

임씨는 7천만원의 빚을 해결하고 여권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국에 있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납치를 당했으니 내 계좌로 돈 송금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부인이 이를 경찰에 알리는 바람에 꼬리를 밟혔다.

임씨의 ‘피랍사건’은 자작극인 것으로 판명 났지만 불행하게도(?) 임씨는 지난 16일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전북경찰청 외사계에 구속됐으며, 마카오 현지에서 여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이씨 등 3명은 여권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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