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법제도가 신뢰받는 방법
상태바
[기고] 사법제도가 신뢰받는 방법
  • 고영상 변호사
  • 승인 2019.10.27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영상 엔케이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영상 엔케이 법률사무소 변호사

변호인은 구속된 의뢰인을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다. 좁은 구치소 방에 있는 것보단 변호인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므로 구속된 사람들은 변호인이 자주 접견 오기를 희망한다. 의뢰인과 대화를 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 중 하나가 사건의 판사 또는 검사와 인연을 물어보는 것이다. 잘 모른다고 얘기를 하더라도 어떻게 알아봤는지 고등학교, 대학교는 물론 과거 일했던 직장, 사회활동까지 연결을 한다. 정색을 하며 친하지 않다고 말해도 돈 때문에 그러냐며 서운해 하기도 한다. 몇 사람들의 오해 내지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만연된 인식이다. 사법농단에 대한 뉴스가 계속 보도되면서 연루된 판사가 담당 재판부에 배정되면 대법원 등에 재판이 불공평하다며 항의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검찰개혁이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이다. 많은 시민들이 서초동에서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채 사람을 바꾸거나 보여주기식 개혁 방안만 나오는 거 같아 우려스럽다. 최근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개혁 중 특수부 축소는 언제든지 퇴보될 수 있다. 수년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될 때도 특수수사의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특수부가 그 임무를 다했다. 앞으로도 사안에 따라 명칭만 바뀐 반부패수사부가 비대한 권한을 남용할 우려는 충분하다. 수사시간 제한, 공개소환 금지, 법무부의 감찰권 강화도 언제든지 퇴보할 수 있다. 현재 피라미드식 명령체계인 검찰 조직을 변화해야 한다. 각 고등검찰청이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검사장 임명 방법 역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법무부의 감찰 이외 공수처를 설치하여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도 있다.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를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견해도 있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외부 감시와 통제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윤석렬 검찰총장이 모 신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이를 검찰이 직접 수사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명예훼손 사건은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찰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검토한 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직접 수사를 하지 않고 처분을 한다. 그런데, 검찰은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위원을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등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는 다르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검찰권 남용이라는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반발이 있었고, 국가위원회는 이해충돌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에 대한 외부통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사법부 역시 비난을 피해 갈 수 없다. 조국 전 장관 수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에 대해 요구하고 있지만, 사법부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 문제 중 구속영장 발부 결정에 대한 비판이 가장 크다. 그 기준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구속영장 발부가 수사 성공의 척도가 되는 잘못된 법문화 속에서 불구속 수사 원칙은 공허하다. 뇌물을 준 사람은 구속되나, 받은 사람은 불구속되며, 건설 현장 사고에서 시공사인 대형 건설사는 책임을 면하고, 현장에서 일을 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만 구속이 된다.

최근 담을 넘어 미국대사관으로 침입한 대학생 4명이 구속되었다. 그들의 행동을 전혀 지지하지도, 납득할 수도 없지만 구속을 해야 할 사안이라는 판단에 동의를 하기 힘들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구속영장 발부 이유였는데, 이들이 미국대사관을 넘어간 장면은 경찰의 현장 채증사진뿐만 아니라 방송사 뉴스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은 대학생들에게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있었는지도 의문이 든다. 왜 사법부가 이러한 판단을 지속적으로 하는지, 관료화된 사법부를 변화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할 시점이다.

사법제도 개혁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면 폭발력은 있지만 휘발성 또한 강하여 순식간에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검찰과 법원도 이러한 경향을 알고 있기에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지도 않고 눈치를 본다. 사법제도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므로 이번만큼은 좀 더 과감한, 구조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