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는 ‘투기꾼’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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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는 ‘투기꾼’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19.09.30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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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이 모호한 경계는 세계적인 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투자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투자를 철저한 분석 하에서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고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행위는 투기로 정의했다. 또한, 투기는 일반적으로 빚을 지렛대 삼아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를 노리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한국 주택시장은 ‘투기판’이며 주택을 소유한 이들은 ‘투기꾼’이다. 실제로 최근 정치권에서 국세청과 행정안전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공급된 신규 주택의 51.1%(250만 채)를 다주택자가 사재기했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주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특혜나 불법이 없었어도 이들은 부정할 수 없는 투기꾼이다. 나아가 자산이 주택 한 채뿐인 노년층도 생애 처음 주택을 장만하는 신혼부부도 재테크를 위해 주택을 장만하려는 청년층도 투기꾼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부분 과도한 빚을 지는 데다 철저한 분석보다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기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에서 누가 이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불평등의 근원에 주거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투기에 나서지 않으면 영원히 ‘흙수저’에 머물러야 한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투기 광풍으로 떠밀고 있다. 
기자가 우려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주택시장에 일대 대 변혁이 없는 한 투기꾼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만 같다. 투기는 다음 세대에 죄를 짓는 행위다. 지금이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려와 실망감이 교차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택시장 안정·주거복지정책’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에 한 조각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라건대, 정부가 부동산에 전 재산을 걸어야 할 만큼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탄탄하게 구축하기를 원한다. 열심히 일한다면 넉넉한 소득을 얻을 수 있으니 임대료와 같은 불로소득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도 주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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